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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기업 기술혁신에 ‘산업수학’ 활용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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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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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 변화와 혁신의 저변에 수학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응용수학자 세르게이 브린이 창업한 구글은 그래프·행렬·확률 등을 이용한 검색 엔진으로 인터넷 시장의 지배자가 됐다. 영화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 생생한 장난감 인형은 벡터와 등위집합이, ‘캐리비안의 해적’의 실감나는 파도는 유체의 운동에 관한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 활용돼 만들어졌다.

선진국에서 수학, 특히 산업수학이 혁신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정부의 지원과 더불어 산업계와 수학계가 함께 기업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개방적인 협력체계 덕이다. 미국의 응용수학연구소(IMA), 독일의 프라운호퍼 부설연구소(ITWN)과 마테온 연구센터가 일례이다. 영국에서는 기업인과 수학자들이 모여 산업현장의 문제 해결에 나서는데, 놀랍게도 이중 90%는 현장에서 바로 해결책이 나온다고 한다. 수학, 공학, 산업을 두루 섭렵한 전문인력이 양성되고, 수학 기반 신생기업들도 속속 생겨났다. 수학이 그 자체로 고부가가치 비즈니스가 되는 ‘수학 창조경제’가 이미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수학의 학문적 수준은 세계 11위권이지만, 순수수학의 비중이 80% 이상이다. 기업 측에서도 수학이 기술 혁신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적었고, 메가트렌드 기술 개발에 수학계의 참여가 저조했다. 국내 대학의 수학과에는 최우수 학생들이 다수 진학함에도, 수학 박사 중 전공을 살려 산업계에 진출하는 비율은 1.8%에 그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한국에서도 산업수학이 싹트기 시작했다. 산업수학이란, 수학적 이론과 분석 방법을 활용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다. 지난해 5월 200여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한 결과, 126건이 수학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였다. 그 이후 미래창조과학부는 ‘산업수학 점화 프로그램’을 진행, 기업의 문제를 수학으로 표현하고 솔루션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IoT에 기반한 암호, 의료 영상 알고리즘, 자연어 처리 및 기계학습 솔루션 등을 개발하고, 위상수학 빅데이터를 활용해 조류독감의 감염 경로를 알아내는 등 창의적인 사례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문제를 의뢰하는 기업, 이를 수학의 언어로 해석하는 코디네이터, 솔루션을 찾는 대학 및 연구소가 모이는 개방적인 협력체계를 마련하고, 지난 3월 판교에 개소한 산업수학혁신센터(Math 1379)에서는 스타트업들의 현장 문제 해결을 도울 계획이다. 대학에는 산업수학센터(IMC)를 설치하는 한편, 특화된 전문석사 과정도 운영하려 한다. 한국에도 산업수학 생태계가 조성되고 민간에 창조적인 수학기반 지식서비스 기업들이 성장해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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