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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임직원 부정으로 사라지는 ‘매출 5%의 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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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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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한앤컴퍼니 감사실장

최근의 기업 환경을 글로벌 하이퍼(Hyper) 경쟁시대라고 한다. 자국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는 뜻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그만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품질만 좋다고 돈을 버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스마트해진 소비자는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더 저렴한 소위 착한 제품을 찾는다. ‘대륙의 실수’로 불리는 중국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제품에 열광하는 고객이 점점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에 가격 경쟁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그래서 기업은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불필요한 간접비용을 줄이거나 혁신을 외치며 생산공정이나 프로세스를 개선하기도 한다. 인력 구조조정도 일상화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임직원이 회사를 떠나고 있거나, 그 채비를 하고 있다.

어떻게든 생산원가를 낮춰보겠다며 임직원까지 내보내는 데, 이 와중에 다른 쪽에서는 매출의 상당 부분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면? 기업의 입장에선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국제공인부정행위조사관협회(ACFE)의 2016년 부패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미국 기업 전체 매출액의 5%에 해당하는 돈이 임직원의 부정행위로 감쪽같이 사라진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으로 환산하면 부정행위로 사라지는 돈은 무려 997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것도 밝혀진 부정행위 금액만 집계한 것이다.

미국 내 기업이 이 정도인데 한국 기업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임직원 부정으로 발생하는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 추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기업들이 임직원 부정행위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업 내 부정행위 적발과 예방에 많은 투자를 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 상당수는 부정행위 적발이나 예방에 무감각하다. 기업 내부 감사 자리에 오너의 친인척이나 지인을 앉히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감사라는 자리를 그저 형식적으로 두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부정행위와 그에 대한 폐해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직원 한 명의 횡령으로 잘나가던 중소기업이 급격히 부실해지거나 심지어는 도산하는 예가 적지 않았다. 한 사람의 부정행위가 남은 임직원의 구조조정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모두 필자가 10년 넘게 기업 부정행위 감사를 하면서 실제 본 사례다. 수시로 기업 내부의 환경을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것도 그래서다. 기업 내 부정행위를 완전히 뿌리 뽑을 수는 없다. 하지만 관심을 기울이고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면 예방은 할 수 있다.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한 임직원 구조조정에 앞서 아무도 모르게 새고 있는 ‘5%’의 구멍을 막는 데 관심을 갖는 게 어떨까.

김기현 한앤컴퍼니 감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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