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물림하는 가난] 불합리한 수급자 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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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중계동 사무소. 朴모(55.여)씨가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에게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월 40만원을 벌어다 주던 아들이 입대한다. 내가 파출부로 버는 월 25만원으로는 생활이 안된다. 수급자가 될 수 있느냐."

하지만 대답은 "노(NO)"다. 시집간 딸네 집의 가구소득이 월 2백만원 가량 돼 그에게 매달 15만원 정도의 부양비를 줄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때문이다.

이 돈과 파출부 수입을 합치면 40만원. 최저생계비(1인 기준 35만6천원)를 넘는다. 그렇지만 실제로 딸은 그에게 한푼도 주지 않는다.

그는 "관절염 치료비도 많이 들고 관리비도 내야 하는데 어떻게 살란 말이냐"며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는 "제도가 그렇게 돼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차상위 계층에는 朴씨처럼 자녀가 부양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 많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는 당사자의 소득이나 재산만을 따져 수급자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자녀의 소득도 따진다. 만약 자녀의 벌이가 기준을 넘거나 재산이 많으면 부모가 극빈자와 같은 생활을 해도 수급자가 되기 어렵다. 법적으로 부모 부양을 자녀에게 강제하는 것이다.

문제는 朴씨의 경우처럼 자녀가 부양하지 않을 경우다. 자녀의 소득 때문에 차상위에 분류되지만 실제 생활형편은 수급자와 다름없다.

그렇다고 부양을 외면하는 자식을 탓할 수도 없다.

우선 자녀의 부양능력을 판별하는 소득액이 비현실적이다. 자녀(4인 가구 기준)의 월 소득이 1백93만원을 넘으면 부모는 수급자가 되기 어렵다. 1백22만~1백93만원 사이라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3년 1분기 도시근로자 4인가구의 평균소득은 월 3백14만원. 이에 비하면 부양능력 판단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조흥식 교수도 "부양의무자 기준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 강도태 생활보장과장은 "한국적 정서상 부모 부양책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며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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