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일본발주로 흥분한 국내 조선업계|현대-한진의 불편한 관계 시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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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진그룹의 한진해운이 일본조선소에 새 배를 주문한것 때문에 국내조선업계, 특히 현대중공업이 몹시 섭섭해 하고 있다.
국내조선업계가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는터에 굳이 조선경쟁국인 일본에 일감을 맡겨야하느냐는것.
일의 발단은 한진해운이 작년 11월 4만t급 컨테이너선 6척(척당가격 2천3백만달러)을 새로 건조하면서 3척은 대우조선에, 나머지 3척은 일본의 히따찌조선에 맡긴데서 비롯됐다.
한진은 일본회사에 조선을 발주한것은 금융조건과 배의 성능때문이라고 설명하고있다. 국내에서는 선박건조자금을 쓸수없었고 히따찌선박의 엔진은 국내엔진보다 기름이 절약되는 경제형이라는 것이다.
이에대해 현대중공업등 국내조선업계는 특히 일감을 받지못한 경제적 손실도 문제지만 한국조선의 대외적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흥분하고 있다.
한국의 해운회사가 경제성이 없다고 외국에 배를 주문하면 어떻게 다른 나라에 배를 팔수있느냐는것.
현대는 한진이 발주한 선형의 엔진은 이미 싱가포르 등에 수출한 실적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가된 3척의 배는 형식상으로는 한진이 히따찌사에 직접 발주한것이 아니라 삼능계열의 파나마 하이데스해운이 히따찌에 발주, 한진이 용선하는 것으로 돼있다. 한진은 10년간 건조비용을 포함한 배값을 분할 상환한후에는 이 배들을 소유하는 내용의 국적취득부나 용선허가를 해운항만청으로부터 얻어놓고 있다.
항만청이 한진에 허가를 내준데는 미주동해안노선(샌프란시스코∼파나마운하∼뉴욕등)에 한진해운을 취항시키려는 속셈이 있다. 미주 동해안노선은 화물이 적고 운임도 헐한 적자노선.
이때문에 75년부터 취항하던 대한선주가 작년7월 동해안노선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항만청은 수출증대등을 위해 이 노선의 취항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판단, 한진해운에 취항을 권고했다. 현대그룹의 현대상선도 취항을 신청했으나 항만청은 한진을 택했다.
그러나 한진은 적자운항을 할수 없다는 이유로 사양하다가 작년 10월 취항을 결심하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낡은 배로는 안되겠으니 새 배를 만들어야겠고 그것도 기름이 적게 드는 배라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컨테이너선 6척을 건조키로하고 정부로부터 계획조선자금을 조달하려했으나 재원부족때문에 돈을 마련할수가 없었다.
한진은 히따찌와 교섭을 벌인 끝에 차관합의를 얻어냈다. 그것도 국내자금은 조선소요자금의 80%까지인데 비해 히따찌는 1백%였다. 히따찌는 6척을 모두 자기네가 건조하겠다는 요구를 내세웠다.
국내 여론을 의식한 한진은 그중 3척을 국내로 돌렸다. 그대신 한국에서 건조하는 3척에 대해서는 히따찌사가 기술 및 설계도를 제공하는 대가로 로열티 1백80만달러를 주기로했다.이같은 조건으로 3척의 건조가 공개입찰에 부쳐져 현대·대우·삼성·조공등 4개사가 참가한 끝에 대우에 낙찰됐다.
심각한 조선불황으로 고심하고 있는 상공부도 조선자금을 대주지 못한 까닭에 일감을 일본에 뺏긴데 대해 몹시 안타까와하고 있다.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계획조선자금이 작년에 1천4백억원, 올해 1천3백억원이다. 돈을 쓰겠다는 요구는 많아 2.5대1정도의 경합이 벌어졌다. 최소한 2천5백억원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금의 대부분은 어선이나 이미 착공한 배로 돌아가고 순수하게 외항선 착공에 지원될수 있는 액수는 3백억원밖에 안남는다. 이 돈으로는 한진이 주문한 배의 건조비가 2천3백만달러, 2백억원정도이니 2척값도 안되는 것이다.
조선업계는 융자재원의 부족때문에 선박주문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과 같은 특수한 케이스엔 신축성있는 지원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악화돼 부실기업으로 전락한후 구제 금융을 대주는 것보다 그 이전에 지원방안을 강구하는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국내조선불황은 실제로 매우 심각하다. 지난 4월말 현재 수출선의 신규수주실적은 14척(30만3천t), 금액으로 1억9천만달러에 불과하다. 불황이 극심했던 작년보다도 못하다. 일감이 적은것도 문제지만 채산성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내년에는 불황이 최저바닥으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와있다. 현재 국내해운업계도 빈사지경에 빠져있다.
해운업계와 조선업계의 이해상충외에 현대 정주영회장과 한진 조중훈회장의 불편한 관계도 이번 문제를 더 어렵게하고있다. 총수끼리의 고차원적 타결이 어려운 형편이다.
현대측에서는 『전폭적인 정부지원으로 대한항공을 운영하는 한진이 이렇게 국가이익을 외면할수 있느냐, 그렇다면 우리도 KAL은 안타겠다』고 하는가 하면 한진측에서는 『현대사람들이 요새 외국비행기를 타고있어 해외여행 사원의 18%만 탑승한게 우리 조사로 밝혀졌다』는 얘기까지 오가고 있다. <한남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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