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서적 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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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최근에 서점가에 나와있는 이른바 「불온서적」 을 단속하고 나선것은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개방정책과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보수적 현실사이에 얼마나 큰괴리가 존재하는가를 실감케 한다.
정부가 지난 82년2월 이제까지 금서로 처리해 왔던 이념서적들을 대폭 해제시킨 것은 우리가 국시로 하고있는 반공을 보다 근본적으로 국민적인 사상차원에서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적대하는 이념의 실상을 알리고 이에 대한 비판정신을 기르자는 취지에서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개방과 비판을 지향한 하더라도 그것이 결과적으로 국가의 안위와 사회적안정에 영향을 줄수 있는 내용이라면 이는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을 여과없이 수용할 위험성이 있거나 우리가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파괴하도록 선동하는 내용, 또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퇴행시키는 내용은 이를 무한정 용납할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당국의 이들 서적 압수단속 과정과 기준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에 전혀 문제점이 없는것은 아니다.
출판사와 서접점 및 복사업체 9개소에서 모두 2백98종 4천5백71권의 간행물과 유인물이 압수됐는데 이 가운데는 상당수가 당국의 납본필증을 받았다.
정부가 출판물을 심의해서 납본 필증을 발급하는 행정행위를 하는 것은 그 내용의 검토에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납본필증을 내주지 않아서 서점가에 내놓지 못하고 출판사 창고에 쌓혀있는 서적의 실례도 있다.
원천적으로 유해한 출판을 단속할 수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 그장치를 통과한 서적들은 자유로운 판매와 구입, 독서가 가능해진 상태에서 이를 「불온서적」 으로 압수 단속한다는 것은 출판사엔 적지 않은 타격이다.
또한가지는 이른바 불온서적의 「불온」 이라는 판정을 어디에 기준을두고 누가 내리느냐 하는 문제다.이 것이 폭넓은 전문적 분석과 의견의 수렴이라는 신중한 과정을 생략하고결정된다면 안될 일이다.
그 기준은 관과 민간 전문인의 공개토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국가의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불법출판이나 유인물은 단속의 대상이 되는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요즈음 같은 정보산업 사회에서는 숨기고 가리는데는 한계가있다.
쇠붙이도 두들겨야 강해지듯 이념교육도 여러가지를 수용하여 비판력을 단련시킬 필요가 있다.그러려면 교수들도 더욱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것이다.어느 대학총장이 『대학에서조차 철학을 제대로 가르칠 교수가 적다』 고 한탄한 것은 우리 젊은 세대에 대한 이념교육의 어려운 현실을 단적으도 말해주는것 같다.
젊은이들의 지적 욕구는 출판인의 분별과 양식, 당국의 단속기준의 객관화, 그리고 깊이있는 교육의 실천에 의해 순리적으로 충족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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