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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대마초보다 중독 강해” vs “개인 자유의지로 금연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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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동관 466호 법정에서 원고인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피고인 담배회사 3사(KT&G·한국필립모리스·BAT코리아)가 8차 변론을 벌였다. 건보공단이 2014년 4월 담배회사를 상대로 “장기간의 흡연으로 인해 소세포암(폐암)과 편평세포암(후두암)에 걸린 건강보험 가입자 3484명에게 지급된 건강보험 진료비 537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한 지 만 2년. 이날 쟁점은 담배의 중독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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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변호인단은 “처음부터 담배를 1갑 이상 피우는 사람은 없다”며 “환자들이 폐암에 걸릴 정도로 오래, 많은 양의 담배를 흡연하게 한 주범이 담배의 중독성”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담배 속 니코틴은 흡연자의 뇌 구조를 변화시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흡연을 계속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담배는 술·대마초·코카인보다 중독성이 강하고 치료되는 비율도 더 낮다”는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의견서도 근거로 제시했다. 또 미국에서 진행된 소송 증거물인 담배회사 내부 문서를 인용해 담배회사들이 담배의 심각한 중독성을 숨겼다는 부분도 언급했다.

건보공단 “흡연으로 폐암·후두암”
담배 3사 상대 진료비 환수 소송
“빅데이터 통해 입증, 이번엔 승산”
법원,암과 연관성 엄밀한 증명 요구
이전 4건 모두 담배회사 손들어줘

이에 대해 담배회사 측 대리인단은 “흡연과 금연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논리로 반박했다. 먼저 KT&G 측은 “니코틴의 의존성은 건보공단 주장처럼 강하지 않으며 자유의지에 의한 금연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금연 성공자의 96%가 자유의지로 담배를 끊었다고 답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한국필립모리스 측도 “정부가 최근 시행하고 있는 담뱃값 인상 정책이나 금연 광고 자체가 자율적인 금연 가능성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BAT코리아 변호인은 “담배의 중독성에 대한 역학적인 인과관계는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이 사건 당사자들이 니코틴 의존증이 있었다는 점은 개별적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보공단 측은 추가 변론에서 “금연 성공자의 96%가 자유의지로 금연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이는 흡연자 전체로 보면 미약한 수치”라며 “금연 시도자 80% 중 60%는 1주일 이내 다시 흡연하며 전체의 2~3%만이 평생 금연을 유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시간에 걸친 변론 내내 양측은 팽팽하게 맞섰다. 법조계에선 소송이 앞으로 3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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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앞서 4건의 담배 소송이 제기됐다. 흡연피해자·가족들이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4번 모두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의료계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와 데이터를 제시해 왔다. 담배가 폐암·후두암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는 건 상식으로 통한다.

하지만 법원은 엄밀한 증명을 요구했다. 대법원은 2014년 판결에서 담배를 피우면 암에 걸릴 확률이 현저히 높아지는지 여부를 각각의 암마다 증명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또 개인적으로 다른 원인이 아니라 흡연 때문에 해당 암에 걸렸다는 점도 추가로 입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래서 건보공단이 처음 소를 제기했을 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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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법무팀 안선영 변호사는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담배회사를 개인이 상대한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을 것”이라며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토대로 한 대규모 역학 연구를 통해 담배가 중독을 일으키고 오랜 흡연 끝에 질병에 걸리게 한다는 점을 이미 입증한 만큼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건보공단 측은 최근 남성 흡연자의 경우 비흡연자와 비교했을 때 후두암·폐암에 걸릴 위험이 각각 6.5배, 4.6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후두암의 79%, 폐암의 71.7%가 흡연이 기여한 것이라는 결과도 나왔다. 건보공단 측은 흡연으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 규모를 매년 1조7000억원으로 추산한다. 이번 소송에서 승소하면 다른 질병으로 전선을 넓힐 계획이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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