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내 몸’ 관찰 수십 년, 미묘한 심신 이상도 발견…딱 맞는 치유법 찾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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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년의 동반자 주치의

여러 질환 동시에 앓는 노인 많아
증상 애매하고 완치 어려워
기능 회복 위한 종합 처방이 중요

건강도 재테크처럼 젊을 때부터 꾸준히 관리해야 안정적이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건강이든 재테크든 혼자 힘으로 완벽하게 관리하는 건 쉽지 않다. 재테크 전문가와 자산관리 상담을 하듯 ‘건강 주치의’의 도움을 받는 건 어떨까. 단골 의사를 정해 두고 주기적으로 상담하면 나이 들어서도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몸의 기능이 떨어지고 앓는 병이 늘어나는 노년기에 내게 꼭 맞는 건강관리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보다도 내 몸을 잘 아는 건강 주치의는 노년기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파트너인 셈이다.

#1 충남 홍성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서환모(67)·박노숙(60)씨 부부. 동년배 친구들이 고혈압·당뇨병 약 두세 개를 달고 사는 것과 달리 별도로 복용하는 약이 없다. 부부가 함께 식당을 운영하기 때문에 남들처럼 건강 식단을 챙기기도, 주말에 시간을 내 운동하기도 쉽지 않지만 대부분 건강 수치는 정상이다. 15년째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은 덕택이다. 부부의 담당 의사인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김영식 교수는 “건강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고지혈증이 있지만 약은 먹지 않고 생활습관 조절로 다스리는 정도”라고 전했다.

#2 서울 중구에 사는 이영민(84)씨와 함께 등산하러 다니던 친구 20명 중 13명이 세상을 떠났다. 남은 7명도 저마다 한두 번씩 중병을 치렀지만 이씨는 예외다. 여태 병치레로 자식 신세를 진 적이 없다. 여전히 허리는 꼿꼿하고 걸음걸이에 힘이 있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다만, 단골 의사를 정해두고 틈틈이 건강을 상담했을 뿐이다. 23년째 이씨를 돌보고 있는 이가정의원 이명춘 원장은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지만 잘 관리되고 있다. 동년배와 비교하면 건강 상태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같은 의사를 아주 오래 만나왔다는 것이다. 서씨 부부는 15년째, 이씨는 23년째다. 아프지 않을 때도 병원 방문은 거르지 않았다. 평소 아주 사소한 문제라도 의사와 상담했다. 그 결과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히 관리할 수 있었다. 환자를 오래 관찰한 의사는 미묘한 변화까지 파악해 환자에게 꼭 맞는 처방을 내린다. 단순히 약만 처방하는 게 아니라 질환을 어떻게 관리할지 종합 계획을 세워준다.

신체 기능 저하, 더 큰 질환으로 악순환

특히 노인 환자라면 이런 접근이 중요하다. 일반 성인의 경우 특정 질환에 꼭 맞는 치료법이 있다. 노인 환자는 정답이 없다. 환자마다 다르다. 여러 질환을 동시에 앓는다. 대부분은 완치가 어려운 퇴행성 질환 혹은 만성질환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4년 낸 노인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10명 중 9명(89.2%)은 하나 이상, 절반(46.2%)은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이 있다. 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윤종률 교수는 “일반 성인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게 목표다. 반면에 노인은 치료가 되지 않는 질환이 많다. 관리를 잘해 합병증이 오지 않도록 막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증상이 대부분 애매하다는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 걸음걸이에 문제가 있다면 나이가 들어 걸음걸이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파킨슨병과 같은 질환이 원인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증상은 있는데 병이 진단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실력 있는 의사라도 환자를 꾸준히 관찰하지 않았다면 증상이 왜 나타났는지 판단하기 힘들다. 강남성심병원 가정의학과 노용균 교수는 “나이가 들면 신체 기능이 떨어지기 쉽다. 단순히 늙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몸의 전반적인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인 46.2%는 만성질환 3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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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신체 기능 저하는 악순환한다. 질병이 오면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더 큰 질병을 얻기 쉽다. 때때로 질환 자체보다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노인 낙상이 대표적이다. 뼈가 약한 노인은 가벼운 엉덩방아에도 골반 뼈가 부러지기 쉽다. 이땐 골절보다 신체 기능 저하가 위험하다. 엉덩이 뼈가 부러진 노인 3명 중 1명은 1년 내에 사망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엉덩이뼈가 부러지면 스스로 몸을 뒤척일 수 없고, 팔다리를 중심으로 근육량이 급격히 감소한다. 원래 팔다리로 가야 할 혈액과 체액이 몸통에 모여 과부하를 일으킨다. 생명과 직결된 심장이나 폐에도 무리가 가고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원장원 교수는 “질병이 없어도 신체 기능이 떨어져 있으면 삶의 질도 크게 저하된다. 스스로 제 몸을 가누지 못해 간병인의 도움을 받거나 장기요양기관에 입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마다 약물반응·치료효과 달라

다양한 질환을 함께 앓는 노인 환자에겐 적극적인 검사와 치료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노인은 일반 성인과 달리 사소한 질환에도 신체 기능이 큰 폭으로 떨어져 회복이 쉽지 않다. 회복 후에도 예전 기능을 되찾기 힘들다. 노인은 의학적으로 일반 성인과 아주 다르다. 30세 이후 각 기관의 기능은 매년 1%씩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마다 약물반응과 치료 효과도 다르다. 여러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치료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나이가 들면 간·신장 대사 능력이 떨어진다. 치료용으로 같은 약을 먹어도 노인에겐 독이 될 수 있다. 8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혈압약을 2개 이상 복용하는 환자의 사망률이 복용하지 않는 환자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런 이류를 들어 유럽고혈압학회와 유럽심장학회는 치료 목적으로 고혈압 약물을 복용할 때 주의를 요하고, 가급적 전문가와 상의하도록 권고한다.

노인 환자에게 병의 치료보다 중요한 건 ‘기능 회복’이다. 이는 신체적인 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지기능의 정도나 우울증 유무에 따라 처방이 다르다. 환자뿐 아니라 그의 가정까지 고려해야 한다. 실제 대부분의 가정의학과에선 만성질환 병력, 근육량, 복용 약물, 영양 상태뿐 아니라 일상생활 수행능력, 사회·경제적 상황,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본다.
노용균 교수는 “나이와 건강 상태에 따라 챙겨야 하는 건강 포인트가 달라 평생 곁에서 건강을 관리해 줄 수 있는 의사를 두고 꾸준히 다니는 게 건강수명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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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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