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식『불꺼진 집』|이삼교『아살박』|이창동의 『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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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분단이 할퀴고 간 상처의 아픔을 아물게 하려는 소설적 시도는 그간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져 왔다. 특히 80년대 이후 성행하고 있는 판에 박힌 소재로서의 분단소설은 독자에게 자칫 식상한 느낌을 줄수도 있으나 최근 그 한계성을 벗어나려는 작품이 시도되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이미 지난해부터 이은식은 하류층 농민들이 분단의 갈등과정에서 어떻게 이념적 수용과 현실적 욕구를 충족시켰는가를 추적해 왔는데, 이번의 『불꺼진 집』(「오늘의 책」봄호)도 단조로운 구성이긴 하나 이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념과 신념이란 현실적인 자기욕구의 충족을 위한 생존수단에 지나지 못했다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그래서 단순히 어떤 이념을 미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갈등이 아니라 진솔한 삶, 그것에 충실하려는 민중적 고난이 어떤 모습인가를 그리고자 노력한 흔적을 느끼게 한다.
이와는 달리 분단의 갈등을 가족적 아픔으로 다루는 소설이 이삼교의 『아살박』 ,이건숙의 『엄마의 미움』(이상「한국문학」4월호), 이창동의 『소지』(「실천문학) 봄호) 등에서 나타난다. 이 세작품은 다 분단의 갈등속에서 학대받다가 희생당하며, 이로 인한 상처는 아물지 못한채 30여년간 이어져 내려와 오늘의 역사적 현장에서조차도 불신과 저주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미움』의 경우는 그 아픔이 딸에게까지는 유전되어 오지 않아 증오의 대상이었던 이모의 가족들과 화해를 모색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아살박』과 『소지』는 그 한이 바로 오늘에까지 이어져 내려와 또다른 갈등. 또다른 희생까지도 치르게 한다는 2∼3대에 걸친 수난상을 증언하고 있다. 혼란기에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를 잃은 집안의 아이들이 자라나 새삼 오늘의 역사적 현장속으로 뛰어들었다가 겪게되는 아픔은 과연 우리시대에 진정한 화해와 해한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일깨워준다.
분단의 갈등을 가족사적 아픔으로 다룬 것은 이미 그 직접 체험자로서 이문구·이문열·김성동 제씨에 의하여 밀도짙게 추구되어 왔다. 그러나 그 아픔이 오늘의 역사적 현장에서는 어떻게 대응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희생은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문제는 새로운 과제가 아닐수 없다.
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의 갈등이 남은 아픔은 후손들에게 달갑지 않은 학대의 유전인자로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하는 이 소설에서 우리는 토착적인 기복으로 자손들의 안녕을 갈구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할머니들의 소망만으로 이들에게 씌워진 증오와 불신의 유전인자가 사라질리도 없고, 또 그렇다고 『소지』의 대학생 김성호처럼 무작정 집을 뛰쳐 나간다고, 혹은 『아살박』의 대학생처럼 정신병자가 되어서도 일념으로 못잊어 집을 탈출한다고 이 시대의 한의 응어리가 쉬 풀릴 것인지는 새 과제로 남을수 밖에 없겠다. 임헌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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