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승객이 고속도로에서 내려 숨졌다면 택시기사 책임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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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승객이 목적지를 제대로 말하지 않아 고속도로에 내려준 뒤 이 승객이 다른 차량에 치여 숨졌다면 택시기사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

법원은 이 기사에게 유기치사죄를 인정했다. 유기치사는 늙었거나 어리거나 질병이 있는 등 사유로 도움을 요하는 사람을 보호해야할 법률상ㆍ계약상 의무 있는 자가 그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범죄다.

대구고법 제1형사부(이범균 부장판사)는 유기치사 혐의로 기소된 택시기사 A(48)씨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또 피고인에게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A씨는 2014년 7월 20일 오전 2시20분쯤 경북 안동시의 한 도로에서 대구에 가려는 40대 남자 승객 B씨를 태웠다. B씨는 술에 취해 있었다. 대구에 다다랐을 무렵 B씨는 횡설수설하며 목적지를 얘기하지 못했다. 결국 남대구요금소 인근 고속도로에서 B씨가 내렸고 A씨는 그대로 가 버렸다. 이후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헤매던 B씨는 차량 두 대에 치여 숨졌다. 이곳은 방음벽 등이 설치돼 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승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태워줄 계약상의 의무가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고속도로에서 스스로 하차한 것으로 보이고 30여 분간 헤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볼 때 피해자의 책임 역시 상당하다”고 했다.

이종길 대구고법 공보판사는 “고속도로는 위험한 장소인 만큼 택시기사가 승객을 안전한 곳에 내려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며 “다만 피해자가 스스로 내렸고 30여 분간 출구를 찾아다니다 사망한 만큼 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형 집행을 유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4월 부산지법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했다. 택시를 타고 가다 자동차 전용도로 갓길에 내린 승객이 다른 차량에 치여 숨진 사건에 대해 택시 운전기사(65)에게 유기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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