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어뢰정 인도 우리측 대표 가야산호 함장 김광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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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공측은 우리가 그들의 승무원과 어뢰정을 인도해 주는 그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승무원이나 시체를 확인하도록 제의했으나 그냥 됐다며 인수서에 서명을 하더군요.』
중공어뢰정과 승무원의 인수인계에서 한국측 대표로 역사적인 임무를 마친 해양경찰대 군산지대소속 제258경비함 가야산호 함장 김광우경감(46·사진(좌))은 28일이 자신의 생애 중 가장 보람된 날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김함장은 지난 22일 하오9시쯤 군산해역을 경비하던 중 제6어성호가 하왕등도까지 끌고 온 중공어뢰정을 예인하라는 명령을 받고 곡진파 등 2명의 부상자를 1차로 군산에 호송했으며, 2차로 승무원 11명과 어뢰정을 군산외항까지 예인했고 28일에는 이들을 다시 중공측에 인도했다.
중공해군장병들은 계급장이 없어 상하 구별이 쉽지 않았으나 자기들끼리는 엄연한 서열이 있었다고 했다.
23일 곡진파 등 부상자 2명을 호송할 때도 『누구 같이 갈 사람 없느냐』고 했더니 고지명이 당당히 나섰다는 것.
그후 고는 군산호텔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관계자들과 대화에 줄곧 앞장 서왔었다.
28일 인수인계 과정에서도 중공측 대표로 나온 주홍희 북해함대참모장보다 직함을 끝내 밝히지 않은 부대표 왕저충이 실질적인 책임자 같았다고 했다.
왕은 인수인계 과정에서 일절 입을 떼지 않았지만 주는 서명을 하기 직전에 왕의 표정을 살핀 뒤 왕이 고개를 끄덕하자 사인을 했다고.
경남거제 출신인 김함장은 통영수산고교를 나와 육군병장으로 제대한 후 68년 해양경찰대 순경으로 투신했다.
l7년간 갈매기를 벗삼아 물위에 떠다니느라 가족과는 1년에 2∼3번 정도 만나며 84년2월 경비함 함장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한달에 25일간 해상근무를 하고있어 지난 1년 동안 부산시 사직동에 따로 사는 가족과는 딱 한번 만났다고.
그러나 그는 연안해역을 경비하고 우리 어선들의 어로작업을 보호하는 「사명」 때문에 사생활은 당분간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함장은 경비함 옆구리에 어뢰정을 매단채 중공초계정 704함과 계류하는 작업이 기술적으로 상당히 힘든 일이었지만 대원들이 합심해 3번씌이나 계류를 시킴으로써 이를 지켜본 해군관계자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해경 제258함상="김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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