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으로 인상" vs "제도 수술 먼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는 노사정 협상이 7일 시작된다. 노동계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제시했다. 경영계는 동결을 요구할 방침이다. 그런데 올해 협상의 관건은 액수가 아니다. 최저임금을 산정하는 기준과 제도를 놓고 격론이 벌어질 전망이다. 지난해에도 이 문제가 부각됐지만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주문하면서 묻혔다.

한국 최저임금 적용률 OECD 최고
"대상자 65%는 빈곤층 아니다"
정부, 소득·업종별 차별화 검토
노동계는 제도 개선 반대 투쟁 예고

올해는 다르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본래 취지대로 빈곤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쪽으로 제도 개편을 강하게 요구할 방침이다. 정부도 비슷한 생각이다. 정부와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 가운데 실제 빈곤가정이 얼마나 되는지에 주목한다. 빈곤가정의 생계비 보전이란 최저임금의 본래 취지에 맞게 실제 최저임금 대상자를 가려보자는 거다.

기사 이미지

이와 관련 유경준 통계청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할 당시 “최저임금 근로자의 약 65%는 빈곤가구가 아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동욱 기획홍보본부장은 “나머지는 제법 살만한 사람들이 자녀 학비 보충, 은퇴자의 생활비 보충용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최저임금 적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유럽 선진국 중 세계 최고의 적용률을 기록 중인 프랑스도 10.8%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 움직임을 보이는 영국과 미국은 각각 5.3%, 3.9%다.

기사 이미지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은 2001~2014년까지 물가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연평균 8.8%의 인상이 지속하는데도 계속되고 있다. 경총 김 본부장은 “최저임금이 빈곤층의 생계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청년의 아르바이트비나 노동계의 임단협 협상을 앞둔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심지어 알바비와 최저임금을 혼동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근로장려세제(EITC)와 접목해 빈곤가구에 세제혜택을 더 많이 줘서 일하는 빈곤층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필요하면 소득별, 업종별로 최저임금액을 다르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OECD도 지난해 발간한 최저임금 보고서에서 한국에 같은 방안을 권고했다. 그래야 저소득층의 실질적인 빈곤 탈출 방안이 된다는 분석을 곁들여서다.

산정 기준도 협상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외국은 상여금이나 외국인근로자에게 제공되는 숙박비, 급식수당, 가족수당을 최저임금에 산입한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기본급에 가깝다. 외국처럼 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추가 임금을 포함하면 최저임금액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기사 이미지

OECD도 이런 점을 인정한다. 정부와 경영계가 “최소한 상여금처럼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항목은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OECD가 발표한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중간 임금을 받는 근로자의 45.8%로 회원국 중 18위다. 그러나 산입 범위를 선진국과 같이 계산하면 50.9%로 12위에 해당한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보다 높다.

그러나 노동계는 제도 개선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년도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을 위한 전국적인 투쟁을 예고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알바노조 등이 참여한 최저임금연대는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주체의 한 축인 가계에 적절히 소득이 돌아가지 못해 소비 부진이 야기되고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굴레에 빠진 것”이라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선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