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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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놀랄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술많이 마시는 국민에 우리가 뽐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81년 한햇동안 세계의 술소비량을 비교하고 한국인은 9.2ℓ로 단연 세계 1위라고 밝혔다.
2위인 헝가리인이 6.2ℓ, 3위인 동독인이 5.9ℓ이니까 그야말로 족탈불급이다.
결코 명예 롭지만은 않은 기록이라 입맛이 씁쓸 하다.
우선 60년에 세계 최하위를 기록했던 우리가 불과 20년 사이에 술을 6백62%나 더 마셔대게 됐다.
경제생활이 나아진 때문이라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아프리카·중남미·태평양지역 제3세계 국가들의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게 못마땅하다.
구미 선진국들의 술소비는 정반대로 즐어들고 있다.
술소비가 늘면서 국민 건강은 물론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한국인의 호주·호주습성이 요즘 생겨난것 같지는 않다.
술을 관혼상제의 가장 요긴한 식품으로 취급하는 습성부터가 그렇다.
제사가 끝나면 돌아가며 마시는 음복습관까지 있다.
한잔 마시곤 잔을 건네는 것은 풍류가 됐다. 잔 돌리기다.
고려때 윤관과 오연공이 가양의 술을 나누며 잔을 들다 소나기로 냇물이 붇자 양쪽 나무 등걸에 앉아서로 돈수하며 밤이 깊도록 술을마셨다는 얘기도 있다.
정산의『장진유사』에는 한술 더뜨는 대목이 나온다.
『한잔 먹세그녀, 또 한잔 먹세그녀/꽃꺾어 산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녀/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여…』「죽은 뒤엔 누가 술한잔 먹어보라고 권하겠느냐」는 대목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밥상에 반주가 오르는건 우리의 풍속이기도 했다.
『여사서』의「대객장」엔 손님상에 밥과 함께 술을 내며, 객이 하직할 때도 이별하는 술을 내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춘향전』엔 거지도령 이몽룡이 춘향모에게 『주주객반이라 하였으니 나밥 한술 주소』하는 대목이 있다.
주인은 손님에게 술을 권하고 손님은 주인에게 밥을 권한다는 말이다.
그건 술이나 밥이 궁하던 시절에 인심을 기르는 풍속이요, 예절이었다.
그러나 요즘 사발에 독주를 가득 부어 돌리며 억지로 권하는 술버릇은 결코 좋아보이지 않는다.
술도 절도를 차려가며 마시는 멋을 찾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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