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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영국 EU 탈퇴 고민에 왜 세계경제가 떨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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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유럽연합

유럽연합(EU)이 휘청거리고 있다. 난민 문제에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관련국은 국경 봉쇄로 맞서는 등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반이민 정서는 유럽통합이 추구하는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갉아먹는다. 글로벌 경기 침체는 EU 각국의 정치·경제·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키며 불협화음을 야기한다.

여기에 영국의 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Brexit)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영국은 6월 23일 EU 탈퇴 국민투표를 예정하고 있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체코·덴마크 등 반(反) EU 정서가 강한 나라들의 연쇄 탈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언론과 각종 자료에 기초해 브렉시트와 EU의 위기에 대해 알아봤다.

쟁점과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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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는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인 영국이 EU를 탈퇴했을 때 가져올 경제·정치·사회적 파장은 엄청나다. 유럽 내 28개국이 속한 EU는 5억 명이 넘는 인구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정치·경제 블록이다. 영국은 EU 인구의 13%, 경제의 17%를 담당한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된다면 당장 영국 경제가 타격을 입겠지만 그 여파는 유럽 전체, 그리고 전 세계로 뻗을 수밖에 없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EU 수출액은 480억 달러(약 55조560억원)에 달했는데, 이 중 15.2%가 영국에서 나왔다. 브렉시트가 단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도 촉각을 곤두세워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처칠이 불지핀 유럽통합, 세계 최대 단일 시장으로

1946년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스위스 취리히대 연설에서 유럽통합의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인 연설을 남긴다. 그는 유럽의 재건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 유럽합중국의 건설을 주창했다.

49년 유럽통합을 도모하는 국제기구인 유럽평의회가 창설됐다. 그리고 51년 향후 유럽통합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탄생한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6개 국가 간 경제 협력뿐 아니라 전쟁 물자로 쓰이는 석탄과 철강을 공동 생산·관리함으로써 전쟁 방지라는 더 근원적인 정치적 함의를 띠었다. ECSC를 시작으로 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 등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유럽 각지에서 일어났다. 이 세 기구는 67년 유럽공동체(EC)로 통합된다. 93년 EC는 12개 회원국 간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체결하고 94년 1월부터 공식 명칭을 EU로 바꿨다. 유럽연합의 탄생이다. EU는 팽창을 거듭하며 2013년 크로아티아가 합류하면서 지금의 28개 회원국, 인구 5억 명에 국내총생산(GDP) 18조 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 단일 시장으로 거듭났다.

유로화 쓰는 국가들 경제위기 … EU 탈퇴 주장 부상

EU의 확대는 유로(Euro)를 단일 통화로 사용하는 19개국 유로존의 성장과 궤를 함께한다. EU가 국가 간 정치 공동체라면 유로존은 단일 통화·시장으로 묶이는 경제 공동체다. EU 회원국이 곧 유로존은 아니다. 덴마크·스웨덴·영국·불가리아·체코·헝가리·크로아티아·폴란드·루마니아 등 9개국은 유로를 국가 단일 화폐로 사용하지 않고 자국 화폐를 사용한다.

EU의 위기는 유로존의 위기에서 초래된 부분이 많다.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유로존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2010년 그리스를 시작으로 아일랜드·포르투갈이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하며 구제금융을 받았고, 2012년엔 스페인·사이프러스까지 위기가 번지며 유로존의 붕괴 위기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독일·프랑스 등 EU를 주도하는 강대국들은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방만한 재정 운영을 문제 삼았다. 구제금융이 시작되면서 해당 국가에 혹독한 긴축 재정이 요구됐다. 그리스는 공공 부문에서 최대 30%까지 인력을 감축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등 국가적 희생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5년이 흘렀지만 아직 결과는 참담하다. 그리스의 GDP는 구제금융 직전과 비교해 25%나 감소했고, 청년층의 실업률은 60%를 넘길 정도로 경제는 쪼그라들었다.

과도한 긴축 재정이 그리스 위기를 더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리하게 단일 화폐로 통합한 유로존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유로존 국가들은 단일 화폐를 쓰기 때문에 자국의 경제 위기 국면에서 통화 가치 조정을 통한 경기부양 등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수 없다. “긴축 재정이 성공한 경우는 대부분 통화 가치를 대폭 끌어내려 수출 경쟁력을 높인 국가였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그리스는 이런 선택을 할 수 없는 만큼 유로존에서 벗어나 자국 통화를 도입해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고 관광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중앙일보 2015년 7월 2일 ‘“유로존 떠나라” “긴축안 수용을” … 노벨상 수상자도 갈렸다’) 지난해 7월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논란이 불붙었던 이유다.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아일랜드·포르투갈 등 유로존 내 주변부 국가들과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각국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도입한 유로화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비판한다. “유로존의 구조적 문제로는 ▶재정 통합 없는 단일 통화 도입 ▶회원국 간 경제적 격차 심화 등이 꼽힌다. 여기에 독자적인 환율 정책을 쓸 수 없는 정책적 한계가 더해진다. 유로화 도입 후 유로존은 경상수지 흑자국과 적자국의 불균형이 상존했다 … 하지만 개별 국가 차원에서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했다.”(중앙선데이 2015년 7월 5일 ‘유로화에 묶인 그리스, 환율정책 묶여 탈출구 막막’)

영국 탈퇴하면 세계 경제 ‘쓰나미’ 대EU 수출 급감

영국의 EU 탈퇴 논란은 2012년 유로존 위기와 함께 찾아온 EU 재정위기 심화가 배경이 됐다. 영국은 유로존에 속해있지 않지만 EU 회원국으로서 유로존 위기 대응에 필요한 대규모의 구제금융지원금을 감당해야 했다. EU 분담금은 각국의 경제 수준에 따라 책정되는데, 영국은 EU 내에서 독일 다음으로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다. 과도한 EU 분담금에 대한 영국 국민의 불만이 쌓여갔다. 여기에 시리아 사태로 난민 문제가 불거지면서 영국 내 여론은 급격히 보수적으로 변했다.

영국이 EU를 탈퇴했을 때 영국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충격은 만만치 않다. 영국 경제성과연구소(CEP)는 브렉시트가 현실화됐을 때 교역 비용(관세·비관세 장벽) 증가로 영국의 GDP가 1.1~3.1%포인트 감소하고, 경기 둔화로 300만~400만 개의 일자리가 줄 것으로 예측한다. 정치적 부담도 크다. 스코틀랜드는 만약 영국이 EU를 탈퇴한다면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투표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브렉시트가 영국 연방의 해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다. 브렉시트로 인한 파장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진다. 영국은 GDP 기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다. EU 내 경제의 17%를 책임지고 있는 큰손이다. 세계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

브렉시트가 방아쇠가 돼 연쇄적으로 다른 국가의 EU 탈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해 10월 체코 현지 여론조사에서 체코인 62%가 “EU 잔류를 놓고 국민투표가 실시될 경우 탈퇴 쪽에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도 반 EU 정서가 강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향후 EU 탈퇴가 예상되는 나라로 덴마크를 꼽았다.

독일·프랑스 등 EU를 끌고 가는 주요 국가들은 어떻게든 브렉시트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지난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영국이 요구한 EU 개혁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도 이런 이유다. 영국은 자국으로 흘러드는 이민자에 대한 복지 혜택 축소, EU 제정 법률 거부권, 영국 금융산업을 침해하는 유로존 결정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권 등을 얻어냈다.

언론은 한국도 브렉시트를 묻는 영국 국민투표 결과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국의 경제 규모는 그리스의 10배 이상이다. 브렉시트의 충격이 그렉시트와는 비할 수 없이 클 것이란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영국인들을 상대로 EU 잔류를 직접 호소할 계획이라 한다. 파급력이 큰 사안인 만큼 우리 역시 영국 잔류를 지지한다는 뜻을 조심스레 알리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중앙일보 2016년 2월 22일 ‘영국의 EU 탈퇴 가능성, 강 건너 불 아니다’)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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