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그리 만만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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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는 아프리카나 중남미등 분쟁지역에서 북한의 군사요원들이 얼씬거리는 것을 평소 우
습게 생각해왔다. 그것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싸움 잘하는 고양이
가 콧잔등 아물날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제 분수도 못찾는 주제에 오지랖넓게 동네일 모두
참견하는 것은 사실 웃음을 살만도하다.
이런 마당에 최근 미국의 유력한 신문·잡지들이 니카라과 반군의지원에대한 한국의 참여 문제를 제기, 보도하고 있다.
뉴욕타임즈지가 지난6일 백악관이 아시아동맹국가들의 니카라과 반군에대한 식량·의료지
원을 계획하고있다고 보도하면서 한국을 그 대상으로 한듯한 보도를 하더니, 이번에 다시
뉴스위크지가 반군들에게 재정지원을 하도록 한국을 설득하는데 미의회가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은 미국이나 반군측의 정식요청이 없어 분명치는 않다.
그러나 우리 외무부당국이『그것은 있을수도,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며 거론의 가치조차 없다』고 단언한 것은 당연하면서도 적절한 대응이다.
니카라파반군에 대한 지원은 그것이 군사적이든 재정적이든 우리에게는 아무런 명분이나
실리가 없는 일이다. 우선 지금의 집권 산디니스타정권은 1937년 쿠데타로 집권하여 42년간 부자·형제의 3대에걸쳐 족벌정치를 펴면서 독재와 부패를 극했던 악명높은「소모사」정권을타도하고 정권을 잡은 세력이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반정부투쟁 과정에서 쿠바·소련등 공산정권의 재정적 원조를 받았고, 집권후에는 공산진영에 외교적으로 치우쳐 있는것은 사실이다.
우리와는 62년1월부터 수교가 이루어졌으나 산디니스타정권이 들어서서 79년8월 북한과도 국교를 맺어 우리 대사관이 철수했다. 그 후로는 우리 멕시코 대사관이 니카라과정부와의 외교업무를 맡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니카라과정부를 타도하려고 반란군을 지원할수는 없지않은가.
니카라과와 월남은 우리에게는 결코 같을수가 없다. 우선 니카라파는 태평양을 건너 미주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3백만명의 소국이다.
이 나라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세력권에 들어 미국의 힘을 얻어 정부가 지속될 수 있었던 속국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미국마음대로 통제되지 않자 미국이 이를 타도하려하고 그것이 제대로 안되자 한국을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은 모양이 우습다.
니카라과의 공산화는 월남의 공산화와는 달라서 우리에게 어떤 위협이나 직접적인 불이익을 가져오는것도 아니다.
더구나 산디니스타의 승리는 단순한 공산세력의 집권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과오를 축척해온 미국의 지배체제에 대한 범 중남미적인 저항의 일환이다.
이 점을 우리는 조금이라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미국은 지난82년에도 우리에게 레바논내전에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작용한바
있었다. 우리는 미국의 이익에따라 동원되어 대리전쟁을 해야할 만만한 나라는 결코 아니다. 그렇 다면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공산세력에 테러를 수출하고 게릴라훈련을 제공하는 북한과 무엇 이 다르겠는가. 정부는 이미 표시한 단호한 태도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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