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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선영의 노벨상 이야기

AI와 노벨상 -뇌 연구와 인공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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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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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AI와 노벨상
- 뇌 연구와 인공지능 -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AI가 그렇게 대단한 기술이라면 그 발명자는 노벨상을 받았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혹자는 AI가 학문의 영역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된 1956년 다트마우스 여름모임의 참가자로서 AI 이론 창시자 중의 한 명인 197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몬이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가 수상한 업적은 경제조직에서의 의사결정에 관한 것이지 인공지능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알프레드 노벨이 유언장에 특정한 과학 분야가 물리, 화학, 생리의학이기 때문이다. AI라는 아이디어와 이론적 골격이 생명과학 분야의 실험과학자들로부터 나왔다면 수상자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와는 달리 AI 이론은 수학, 논리학, 기호학 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탄생했다.

알파고를 탄생시킨 딥러닝 방법의 시발점인 신경망 이론은 1943년에 신경생리학자와 수리학자가 제시했지만, 이는 수리논리학적으로 신경계를 설명하려는 노력이었다. 막상 이를 활용하여 AI의 실체, 즉 콤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든 것은 인지심리학자를 포함한 컴퓨터과학자들이었다. 즉 실험으로 모든 것을 증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생명과학자들이 AI에 기여한 바는 매우 적었다.

AI를 완벽히 구현하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컴퓨터 과학이 주도하며 기기와 그것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인간의 뇌를 생물학적으로 연구하여 학습·기억·정신·마음에 대한 원리를 밝히고, 이를 활용하여 인간에 가까운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실제적으로는 이 2가지 방법을 혼합하여 완벽한 AI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즉 뇌 연구로부터 나오는 데이터를 활용하여 현존하는 AI를 계속 업그레이드시키며, 인간 뇌를 완벽하게 모방하거나 혹은 그보다 더 나은 기계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AI를 개발할 때 중요한 요소들은 모두 우리 뇌에서 처리되는 현상들이니 뇌 연구는 완벽한 AI의 구현에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뇌신경 분야에서는 그간 어떤 업적에 노벨상을 주었을까? 1901년 노벨상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114년 동안 뇌신경 분야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아주 폭넓게 범위를 잡으면 30여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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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들은 신경계의 해부학적 구성과 세포의 역할, 신경정보 전달의 원리와 관여하는 생체물질의 규명, 뇌 특정 부위의 기능, 시각이나 후각 정보의 처리 등에 대한 연구로서, 그야말로 생물화학적 연구 결과가 대부분이었다.

AI 분야에 가장 근접한 노벨상 업적은 2000년에 수상한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에릭 칸델이 바다 달팽이를 이용하여 학습과 기억에서 시냅스의 역할과 생화학적 원리를 밝힌 것이다. 또한 동물이 자기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뇌의 부위를 밝힌 2014년 노벨상 연구도 인지 기능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정서·의사결정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으니, 뇌 연구 결과를 이용해서 AI에 적용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알파고-이세돌 대국을 계기로 고차원적 AI로 무장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시나리오가 은근히 공포심을 조장하였다. 딥러닝은 입력된 데이터에 대해 사람이 일일이 지시어를 통해 감독하지 않아도 기계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최대한 많은 양의 정보를 입력시키고 의사결정의 변수를 최대한 많이 넣어 주면, 인간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을 선택하여 새로운 결과를 제시할 수 있으니 꼭 공상과학적 얘기만은 아니다.

그러나 생물학적 입장에서 더 흥미로운 이슈는 편리한 AI 기계로 인해 인간이 갖고 있는 능력들이 감소하는 것이, 향후 인간의 미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이다. 인간은 지난 만년 동안 빠른 속도로 진화해서 지구 먹이사슬의 정점을 차지했고, 이제는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 이에는 학습이나 사고 등을 통한 뇌의 진화가 큰 몫을 했다.

인간은 뇌를 사용해 각종 도구를 만들고 생물세계의 최강자로 등장했다. 이를 계기로 인간 사회에서의 경쟁력은 신체를 사용하는 능력보다는 머리를 이용한 지적 영역에서의 능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간의 뇌와 같거나 더 우수한 AI가 나온다면, 이제 인간의 어떤 부분이 진화의 동력으로 작용할지 궁금해진다.

뇌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기관으로서 과학에서 마지막 남은 프론티어 중의 하나이다. 수많은 노벨상은 물론 산업적으로 유용한 정보가 쏟아져 나올 수 있는 보물 창고이다. 모든 선진국들이 뇌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연구소의 한해 예산만도 못한 규모인 610억원 정도를 70개가 넘는 과제에 투자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뇌연구를 한 개 사업으로 간주하여 국가적 차원에서의 전략을 세우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