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패 악몽 떨치지 못한 아리야 주타누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3홀을 남기고 2타 차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한 아리야 주타누간. 그에게 골프는 잔인한 게임이었다.[골프파일]

아리야 주타누간(21·태국)에게 골프는 잔인한 게임이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생애 첫 승을 향해 나아갔던 주타누간이 마지막 몇 홀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미라지 미션힐스골프장에서 열린 최종 라운드. 3홀을 남기고 2타 차 선두였던 주타누간은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19·뉴질랜드)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15번 홀까지 리디아 고에 2타 차 선두를 달렸던 주타누간은 16번 홀에서 이번 주 첫 3퍼트로 보기를 적어낸 뒤 표정이 굳어졌다.

1타 차 추격을 허용한 뒤 흔들리기 시작했다. 17번 홀(파3)에서 티샷을 그린 왼쪽 벙커에 빠뜨리면서 또 보기가 나와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18번 홀(파5)에서는 티샷을 해저드에 빠뜨리면서 우승 꿈을 완전히 접었다. 주타누간은 마지막 홀 보기로 10언더파 단독 4위로 경기를 마쳤다.

주타누간은 '역전패 소녀'로 유명한 선수다. 2013년 열린 혼다 타일랜드 LPGA에서 2타 차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홀 트리플보기로 박인비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역전패 뒤 한 살 터울 언니 모리야를 안고 펑펑 눈물을 쏟은 장면은 아직도 회자된다.

평균 280야드가 넘는 장타로 주목받은 주타누간은 이듬 해 LPGA투어에 데뷔했다. 그러나 시즌 중반 불의의 사고로 그 해 톱 10에 한번도 들지 못하는 부진을 겪었다. 언니 모리야와 티잉 그라운드에서 장난을 치다 넘어지면서 어깨를 다쳐 실력 발휘를 못했다.

주타누간은 지난 해 29개 대회에 출전해 4번 톱 10이 최고 성적이었다. 시즌 초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김세영에게 연장 끝에 패하기도 했다. 이후 10개 대회 연속 컷 탈락을 당하는 등 또 내리막을 걸었다.

올 시즌 톱 10 한 차례에 든 주타누간은 이번 대회에서 오랜만에 우승 기회를 잡았다. 렉시 톰슨(21·미국)에 1타 차 공동 2위로 챔피언조에서 플레이한 그는 경기 중반까지는 경기를 잘 풀어 나갔다. 페어웨이 안착률을 높이기 위해 드라이버 대신 2번 아이언과 3번 우드로 티샷을 하면서 최종 라운드 중반까지 2타 차 선두를 지켰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페어웨이를 계속 놓치면서 아슬아슬한 파를 적어나갔던 그는 16번 홀 보기 뒤 평점심을 잃었다. 3홀 연속 보기가 나오면서 다 잡았던 우승컵을 놓쳤다.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의 플레이는 주타누간의 플레이와 대조적이었다. 9언더파 공동 2위로 출발한 리디아 고는 여러차례 위기를 겪고도 노보기 플레이를 펼쳤다. 11번 홀에서 벙커, 13번 홀에서는 긴 러프에 볼을 빠뜨리고도 타수를 잃지 않았다. 리디아 고는 "리더보드를 보면서 아직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승은 생각하지 않고 플레이를 즐겼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