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가 말하는 나의 인생 나의 건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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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딸깍발이란 것은 남산골샌님의 별명이다. 왜 그런 별호가 생겼느냐 하면, 남산골샌님은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마른 날은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쳐서 딸깍딱깍 소리가 유난하였기 때문이다(중략)」
주변머리 없는 조선선비를 짐짓 흉보면서도 그들의 지조와 기개·청렴을 높이산일석 이희승 박사(89·인천장학회이사장)의 유명한 수필 『딸깍발이』의 첫머리다. 어쩌면 이글이 5호단구의 원로한글학자인 일석 자신을 가리키거나, 이 박사의 생활지표를 우회적으로 고백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마치 주변머리 없는(?) 남산골샌님처럼 60년간을 오로지 「한글의 체계화」라는 고되고 한없는,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할 엄숙한 작업에 몰두해 왔기 때문이다. 『신앙을 갖고있진 않지만 하늘이 내린 복으로 알고 있다오』일석은 자신이 오랜 세월을 건강하게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이 단지 주어진 복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일석은 대부분의 80대가 말하는 것과는 달리 육체적인 건강관리에 그다지 신경을 써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그는 지독한 코피 광에다가 애연가로 꼽혔다.
(89·인촌장학회이사장)그렇다고 육신을 함부로 다룬 것은 절대 아니다.
『특별한 운동을 하거나 건강관리를 한 적은 없고 젊을 때는 가벼운 등산을, 늙어서는 산책을 취미삼아했는대 그것이 오래사는데 보탬을 주었다고 볼수있겠지』
6·25사변이 끝나고 동숭동현재의 자택에 살기 시작한 이후로 30여년간 매일 오후1시간씩 집뒤 낙산과 성북동 뒷산의 명륜동 성곽 등을 번갈아 오르내리며 사색을 즐긴 이 취미는 그가 말하는 것처럼 쉽지만은 않은 생활규칙이다.
그러나 단지 이같은 규칙적습관 하나로 이박사가 장수를 누리며 학문의 깊이를 더 할수 있었다고는 볼수없고, 오히려 대쪽같은 선비정신에 건강한 삶의 비결이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수 있다..
『지조와 의리·주체성을 생명보다 중시했던 옛 조상들의 생활신조를 나의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살아가자는 것이 내 뜻이오. 그러한 신조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문자형태를 가진 한글을 연구하는 한글학도의 입장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요.』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일제하에서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했던 이 박사는 요즈음 한살 연상인 부인 이정옥여사가 병중에 있어 매일의 산책은 못하는 대신 각종 전시회나 자신이 관계하는 모임에 나가는 것으로 몸의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다.
자신의 학문을 성장시킨 요람이자 후학들을 길러낸 가르침의 산실이기도 했던집 근처의 서울대문리대교정을 자주 찾는다는 일석은 『요즈음 젊은이들이 영악스러움 일변도로 기우는 것이 걱정』이라면서 『우리조상들의 절개와 의리·주체의식을 계승해 나가야 모든 사회가 건전하게 될 것』이라는 남산골샌님으로서의 충고를 잊지 않았다. <글 윤재석 기자. 사진 양원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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