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유설만으론 미흡"|운동 폭 넓혀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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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타는 갈증을 풀기에는 너무 짧고 불편하고 아쉽기 만한 「정치의 우대」였다. 6일 서울종로-중구의 10만 명을 비롯, 전국 곳곳에서 국회의원 선거사상 기록을 깨는 인파를 모아 시민들이 그 동안 발산하지 못했던 정치에의 관심과 참여욕구를 극적으로 드러낸 뒤 합동연설회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권자들에게 불편하고 미흡하기 만한 「정치공급」 의 무대여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유세장에 나온 서민들은 극히 제한된 시간과 장소에서 대규모 청중을 모아 일방적 연설을 듣는 「운동장유세」를 후보선별의 공개된 유일한 기회로 한정하고 있는 현행 선거관리제도에 불만을 토로하고 「정치선진화」를 위해서는 보다 다양하고 효율적인 선거운동방식들이 개발, 도입해야한다는 여론이었다.

<짧은 기간>
국회의원 선거사상 유례없는 10만 명의 인파를 동원해 국회위원선거라기보다 대통령선거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 서울종로-중구의 6일 마지막 유세장에 들어서던 김복남씨(56·서울 신당동107)는 엄청한 인파에 흥분된 표정으로 『그 동안 바빠서 유세를 듣지 못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해서 만사 제치고 나왔다. 투표일까지 아직6일이 남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유세를 끝내는지 모르겠다』면서 『마지막유세라는 바람에 이렇게 많이 모인 것 아니냐』고 했다.
상오 11시30분부터 나와 기다렸다는 이재곤씨(37·서울 삼청동l59)는 『유세시작이 엊그제로 알았는데 벌써 끝난다니 아쉽다. 단 6번 매일 하오l시에 시작하는 합동연설로 30만 유권자가 어떻게 제대로 후보들의 인품을 가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관위가 현행선거법에 따라 마련한 합동유세계획은 1월30일부터 2월10일까지 2주간에 선거구별로 5∼10일 동안 집중적으로 연설회를 갖도록 되어있다.
횟수는 전국 92개 선거구에서 모두 8백 회에 이르지만 1개 선거구별로는 평균7, 8회 꼴. 서울의 경우 적은 곳은 4회, 많아야 8회의 합동연설회를 갖도록 되어있다.
이처럼 짧은 기간의 제한된 합동연설회 때문에 유세장마다 인파로 혼잡을 빚고도 많은 유권자들이 후보의 얼굴도 못본 채 투표를 해야하는 실정이다.

<불편한 장소>
전국선거구마다 합동연설회의 장소로 쓰인 각급 학교 운동장은 풀린 날씨로 눈이 녹아 대부분이 진흙수렁. 청중들은 진흙탕에 구두와 바지가랑이가 흙투성이가 된 채 추위에 떨며 3∼5시간을 서서 유세를 들어야했다.
6일 10만 인파가 몰린 종로·중구의 구 서울고등학교 유세장과 서울남성국교에서 열린 동작구유세장 등 대부분의 유세장은 흙탕물이 발목까지 잠기는 늪지대를 방불케 했다. 남성국교 유세장을 들어서던 안창기씨(36·사당2동363)는 『입구에서 팸플릿대신 장화를 나눠주는 것이 더 낫겠다』고 꼬집고는 『선관위가 좀더 청중의 편의에 신경을 썼다면 사전에 모래를 갖다 뿌리는 등 조치를 할 수 있었을텐데 너무 무신경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몰리는 인파에 맹인·지체부자유자 등은 입장도 못하기 일쑤. 6일 서울용두국교의 동대문구 마지막 유세에 왔던 맹인 안성균씨 (46·서울 청량리1동332)는 인파에 밀러 돌아서면서 우리 같은 장애자들은 유세서 들을 기회도 없어야하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4일 서울휘경국교유세장에 나온 김의숙씨(79·서울면목4동434)는 『춥고 다리 아프고 앉고싶어도 진흙바닥에 앉을 데도 없다』 면서 『왜 꼭 운동장에서만 연설을 하는지 모르겠다. 교회· 체육관이나 실내에서 할 수도 있고 TV로 중계라도 하면 우리 같은 늙은이도 안방에서 후보얼굴을 볼텐데 이 고생을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역정을 냈다.
몰린 청중에 화장실 이용도 문제. 4일 서울 보광국교유세장에서는 화장실을 못 찾은 청중들이 학교 교실 뒤로 돌아가 담벼락에 줄지어 소변을 보는 진품경도 보였다.
6일 서울 동대문국교유세장에서는 물려든 청중들이 화단에까지 올라가자 학교측이 긴급방송으로 어린 자녀들의 화단을 보호해주도록 요청하는 한편 교사들이 나와 청중들의 무단통행을 제지하는 모습도 보였다.

<범법>
현행선거법 상 유세장안에서의 피킷 사용·유인물배포는 금지돼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유인물 배포와 함께 피킷을 들린 박수부대를 유세장에 동원, 경쟁적으로 응원전을 펴 유세분위기를 흐리는 사례가 많았다.
3일 서울삼선국교운동장에 나온 김동태씨 (31· 서울 정능3동377) 는 『이런 분위기에서는 논리적인 설득이 되겠느냐』 면서 『유권자나 후보들이 보다 차분하게 정책대결을 할 수 있도록 선거운동방식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일 서울 종로-중구 유세장에 나온 김태원씨(37·서울 아현동58)는 『연설회 횟수를 늘리고 실외는 물론 실내에서의 개인 연설회나 라디오·TV를 통한 토론 등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도 이런 구태의연한 방법만 허용하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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