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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미 실종이 AI 시대보다 더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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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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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논설위원
고용노동선임기자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격돌 이후 어디를 가나 인공지능(AI) 얘기다. 2020년부터는 AI가 상당수 직업을 대체한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서도 같은 전망을 내놨다. 제4의 산업혁명이 시작된다는 예측이 황당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당장 현실화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두렵다. 직업을 잃을까 무서운 게 아니다. 인간미가 없어서다.

경제·경영학에는 근무태만(Shirking)과 무임승차(free riding) 같은 용어로 가득하다. 돈 값을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다. 성과형 임금체계와 같은 용어도 마찬가지다. 기준은 돈이다. 오로지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영상 대동사상은 ‘쩐(錢)의 전쟁’에 근로자를 동참시키는 쪽으로 모인다. 가족 같은 일체감은 부수적 떡고물 정도로 여긴다. 명예퇴직을 거부한 근로자의 책상을 벽을 향해 배치하고 책조차 못 읽게 관리지침을 내린, 이른바 ‘면벽 압박’이 거리낌없이 자행되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심리적 동기부여는 뒷방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인간미라곤 갈수록 찾기 힘들어졌다.

근로자라고 다를까. 각 지방 고용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은 곤혹스러운 일을 자주 겪는다. 법적 문제라기보다 근로윤리와 관련된 사안을 두고서다. 최근 사례를 하나 보자. 얼마 전 어느 지방 고용노동청에 “퇴직금을 못 받았다”는 진정이 들어왔다. 회사에서 퇴직금도 주지 않고 내쫓았다면 비난 받아 마땅한 부도덕한 행위다. 이걸 조사한 근로감독관은 한숨부터 쉬었다. “이런 것까지 법으로 보호해야 하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 근로자는 몇 해 전 중소기업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그는 “퇴직금을 월급에 산정해 쪼개서 지급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정이 딱해 회사에서 그의 요청을 수락했다. 다른 직원뿐 아니라 당사자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데 사내 직원과 크게 싸우고는 무단결근을 했다. 연락도 끊었다. 그러곤 고용청에 진정을 냈다. 회사로선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법대로라면 이 근로자는 매달 퇴직금을 나눠 받고 웃돈으로 또 퇴직금을 받게 된다. 퇴직금 쪼개기가 법으로 금지돼 있어서다.

그렇다면 법은 도덕성을 지켜주고 있을까.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그가 겪었던 일이 있어서다. 한국기술교육대 총장으로 재직할 때다. 그는 직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동절기 점퍼를 지급한 적이 있다. 이 장관은 “파견근로자인 청소하는 아줌마에게도 주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펄쩍 뛰었다. 파견근로자보호법을 들먹이면서다. 정규직에게 주는 복지 혜택을 파견근로자에게 제공하면 회사에서 해당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다. 점퍼 하나 지급할 뿐인데 그걸 받은 파견근로자는 곧장 그 회사의 정규직이 된다는 말이다. 이러니 같은 회사에서 일해도 신분에 따라 뭐 하나 나눌 수가 없다. 콩 한 쪽도 나누라는 성현의 말은 법 앞에서 공허한 헛소리일 뿐이다. 이게 귀천을 조장하고 법적으로 고착화시키는 게 아니고 뭐겠는가.

AI 시대엔 로봇이 일자리를 채갈 수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싱가포르 바이오센터를 이끄는 필립 여(Philip Yeo)의 말처럼 “인재를 날치기”당하는 기분이 들 법하다. 그런데 로봇이 대체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교사, 디자이너, 화가 같은 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 냄새가 진하다. 결국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미란 얘기다.

근로윤리는 그런 면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개혁이다. 윤리가 살아 있다면 면벽 수행을 강요하지도, 법을 악용하지도 않는다. 금전적 인센티브보다 자기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게 생산성을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많다. 어쩌면 생산성 이론이나 경제·경영학도 AI 시대에 살아남는 인간에게 초점을 맞춰 바뀌지 않을까. 기존 이론대로라면 로봇에 성과급을 줘야 하니 말이다. 예기(禮記)에 ‘학연후지부족(學然後知不足)’이라는 구절이 있다. 인간미를 되찾아야 비로소 인간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시대가 곧 온다.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