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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멍때려야 창의적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2호 24면

일러스트 강일구

집중력이 떨어져 걱정이라는 20대 중반의 대학생이 진료실에 왔다. 그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인데 집중이 안 돼 ‘주의력결핍장애’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공부시간을 물어보니 하루에 8시간 이상 꾸준히 하고 있고, 실제 시행한 집중력 검사도 정상범위였다. 검사결과를 설명해도 본인은 집중력 부족으로 상심해 있었다. 이처럼 집중력을 더 높여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강박의 원인은 목표치를 비현실적으로 높게 잡았기 때문이다. 머리가 청명한 봄날씨같이 맑고, 읽는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가는 날이 계속 되기를 바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욕심은 마치 자동차의 엑셀 페달을 끝까지 누른채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날 위험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더 집중을 해야만 한다는 절박감이 생기는 것은 시간은 적고, 해야 할 일과 공부는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집중만 잘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집중에는 치러야 할 댓가가 있다. 먼저 집중을 하면 할수록 시야가 좁아진다. 살면서 넓은 시야로 주변을 둘러보며 점검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좁은 점으로 집중하면서 주변의 것들을 놓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대인관계의 유연성, 타인 감정의 감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미묘한 변화를 인식하는 일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자기 일에는 몰두해서 성공했지만 독불장군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고립되어 버리는 사람들이 대표적 예다.


두 번째는 집중력이 주어진 과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창의력과는 역비례한다. 창의력은 거꾸로 몽상과 멍때리기를 잘 해야 증가한다. 2009년 미국 피츠버그 대학의 세이에트 박사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심리과학’지에 발표했다. 54명의 피험자에게 약간의 술을 마시게 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무알콜 음료를 줬다. 『전쟁과 평화』의 한 부분을 읽고 거기에 대한 생각을 말하라고 하자, 술을 마신 집단에서 훨씬 창의적인 생각을 해냈다. 알코올로 논리적 사고의 틀을 해제하니 창의적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신경영상연구에서도 몽상을 할 때 뇌의 여러 영역이 활성화가 되는데, 이렇게 여러 영역이 활동을 해야 복잡하고 예측하지 못할 네트워크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창의적 결과물이고 급격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이겼다. 이제 인간이 아무리 집중력을 높여 빨리 외우고 문제를 풀어도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 20년후의 세상에서는 인공지능(AI)와 경쟁하지 않을 직업만 남을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정신세계가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집중력을 높이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향이 아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력을 높이고, 커다란 개념과 이치를 깨닫는 것에 비중을 둬야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자유로운 몽상의 시간을 가지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더욱이 도시 생활의 많은 자극과 멀티 태스킹은 뇌를 쉽게 지치게 한다. 몽상은 디톡스 효과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멍때림의 죄의식에서 벗어나 과감히 하루에 한 번씩 몽상의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자.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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