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일의 시집 『그리운 주막』|이명주의 『눈위를 걸으며』외 1편|김용민의 『모기와 사람』외 4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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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박태일의 『그리운 주막』(「문학과 지성」사)은 시의 뿌리가 노래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시집이다. 요즈음 와서 주장을 앞세우는 시가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돋보인다.
예를 들어 연작시 『축산항』의 첫 번째 작품 첫머리를 살려 보자.
이쪽 바닥은 조용하고
저쪽 바닥은 따스하고
푸른 한켠으로 놓이는 축산항.
한 고장을 소상히 아는, 그리고 그 앎을 느낌으로 바꿀수 있는 자의 작품임이 금방 드러난다. 바로 이 앎을 느낌으로 바꿀수 있는 힘이 노래의 힘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노래의 틀 속에서 박태일은 신선한 발견들을 한다. 『그리움처럼/애매하게/부딪치는/이물과/고물』(『축산항·2』) 『잠은/너 없는/곳에서의/나의/길이다』(『공일』)같은 표현은 이 시집 도처에서 만날수 있다. 그 신선한 발견들은 삶의 통찰력과 치환될 수도 있는 이미지들이다.
노래의 시가 반드시 정도라고 할수는 없을 것이다. 노래의 파괴도 시의 확대인 것이다. 그러나 시의 뿌리가 노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한 것이고 또 파괴를 위해서도 파괴대상인 노래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점에서 우리는 박태일, 혹은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젊은 시인들을 주목해야 하리라 생각된다. 박태일은 인간의 죽음을 『사람들은/혼자/아름다운/여울,/흐르다가/흐르다가/힘이/다하면/바위귀에/하얗게/어깨를/털어버린다』(「구천동」첫부분)로 아름답게 변형시킬수 있는 능력도 보여주고 있다.
이명주의 「시이편」(「현대문학」)도 노래다. 그중 첫번째 시 『눈 위를 걸으며』만 읽어도 그 사실은 명확해진다. 언뜻 사변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밑에서 받치고 있는 것은 어떤 주장이 아니라 노래이다.
눈 위를 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발 밑에서 무언가 부서지거나 쌓이는 소리가 나는 것을
무슨 고생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눈 위를 상처없이 걷고 싶은 때가 있다.
발자국마다 53킬로그램의 체중이 낙엽져 있지만
덜어내거나 나누어 가지려고 할수록
점점 더 무거워지는 무게도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중간7행)
삶의 일상사와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한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어루만짐은 논리적인 발언이 아니라 삶을 들여다 보는 눈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에 있어서 주장은 타인과의 싸움이고 노래는 자기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다시 음미하게 되는 시다.
「우리세대의 문학 제4호」에 『모기와 사람』외 4편이 실린 김용민은 주목받아야 할 신인이다. 그의 시에는 도처에 재치가 번득인다. 그러나 그 재치를 재치로 끝나게 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삶과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다.
『모진 한풍 이 덜덜 떠는 대추나무들과 겨우 유리창 하나 사이로 적당하게 물 좀 주고 난로도 피워주면 기막히게도 방안에선 무꽃이 핀다. 두 동강난 허리쯤 제 살점 파낸 곳에 물 가득 찬것 아랑곳 없이 거꾸로 매달려서도 무꽃은 핀다』(「겨울풍경」첫부분).
이런 사랑의 시선 또한 시의 뿌리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황동규 <시인>
필자약력
▲38년 서울출생 ▲서울대문리대대학원 영문과졸 ▲『어떤 개인날』 『비가』 『삼남에 내리는 눈』 등 시집과 시론집 『사랑의 뿌리』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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