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유승민 무공천? 새누리당 블랙 코미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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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누리당이 어제 최고위원회의와 공천관리위원회를 잇따라 열었으나 유승민(대구동을) 의원에 대한 공천 문제에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정당이 특정인의 공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고유 권한이다. 우리가 유 의원 문제에 관심 갖는 것은 특정 의원 개인에 대한 호불호 때문이 아니다. 그동안 새누리당이 보여 왔던 공천 과정의 파행과 불공정, 비상식성이 정당 자율성의 범위를 넘어서 유권자의 선택권을 해칠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유승민 문제는 새누리당 의사결정이 얼마나 비뚤어졌는지를 최종 확인하는 절차가 될 것이다.

새누리당이 이날 16명의 공천자를 확정, 발표하면서도 유승민 문제만 풀지 않았다는 건 그에게 여론조사 경선 기회를 박탈했음을 의미한다. 경선에는 최소한 실무적인 여론조사 기간이 이틀 필요하고 그 전후 사전 준비와 결과 확인을 위한 절차적 시간까지 모두 나흘이 요구된다. 25일이 선관위 후보등록 마감일이므로 이제 경선 실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이제 새누리당이 유 의원에 대해 논리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공천 배제(컷오프 탈락)’이거나 ‘단수 추천’ 두 가지가 남게 됐다. 그동안 새누리당이 드러냈던 ‘박근혜 대통령 눈치보기’와 ‘공천역풍 책임 안 지기’의 풍조로 봐서 새누리당은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공천 배제 결정을 하자니 유승민 동정론과 민심 반발이 수도권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누구도 그 책임을 떠맡지 않고 싶어한다. 단수 추천 결정을 하자니 유승민을 배신의 정치로 찍은 박 대통령의 성정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누구도 감히 그 총대를 메려 하지 않는다. 최고위원회와 공천위원회가 서로 결정을 미루는 모양이 마치 ‘폭탄 돌리기’라도 하는 듯하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무결정의 결정’이다.

새누리당의 상황이 얼마나 보기 딱했는지 분당을에서 컷오프된 임태희 전 의원이 자기 문제도 아니면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당 지도부를 훈계했다. 그는 “공천관리위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유 의원에게 대놓고 나가라고 하고 있다. 이제 그런 압력도 모자라 23일까지 결정을 보류해 무소속으로도 못 나가게 한다는 말이 유력하게 돌고 있다”고 말했다. 공천위든 최고위원회든 임 전 의원의 불온한 예측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결국 ‘무결정의 결정 상태’를 끝까지 밀고 가 유 의원으로 하여금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꼼수의 완결판이 선을 보일지 모르겠다. 이럴 경우 유승민 의원은 출마를 위해 탈당을 결행하거나 출마를 포기하고 당에 잔류하는 선택의 기로에 몰리게 된다. 대신 새누리당은 대구에서 사상 처음으로 무공천 선거구를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집권당이 가장 경쟁력이 왕성한 지역의 핵심 선거구에서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는 기괴한 블랙코미디가 상영될 것인가. 이런 장면은 한 정당이 여론의 지적이나 유권자의 선택권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특정인을 표적 제거하기 위해 공당의 모든 자원을 쏟아 붓는 민주주의의 비극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런 불행한 일이 논리적 상상의 영역에서만 머무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