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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최초의 여류 명창 발자취 따라 고창 판소리 여행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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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바울

지난해 11월 개봉한 류승룡·수지 주연의 영화 '도리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최초의 여류명창 진채선과 동리 신재효 선생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동리 신재효 선생이 직접 판소리꾼을 키우던 전북 고창에서 동리 선생과 진채선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고창 신채효 고택

영화

영화 '도리화가'에서 풍족한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신재효는 자신의 집 앞마당에 사람들을 불러모아 소리를 가르친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신재효 선생 고택. 영화 '도리화가'에서 사람들을 모아 소리를 가르치던 곳이다. [사진=문화재청]


영화 '도리화가'에서는 신재효 선생이 자신의 집 '동리정사'에 소리꾼들을 모아놓고 가르친다. 그 동리정사가 있던 터가 판소리 박물관이고, 동리정사 사랑채가 신재효 선생 고택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신재효 선생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흔히 신재효 선생을 소리꾼으로 아는데, 소리꾼이 아니라 귀가 밝은 '귀명창'이다. 신재효 선생은 구전으로 전해오던 설을 창극화했고 수많은 단가를 지었으며, 판소리 이론을 정리하고 가르쳤다.

동리정사 사랑채의 기둥은 앞뒤가 다르다. 그 이유는

동리정사 사랑채의 기둥은 앞뒤가 다르다. 그 이유는 '중인'이었던 신재효의 신분에 있다. [사진=문화재청]


동리정사 사랑채를 자세히 보면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사진 속 기둥의 모양은 둥글다. 하지만 반대쪽에서 사랑채의 기둥을 보면 네모난 기둥이다. 왜 기둥의 앞뒤 모양이 다른 걸까? 신재효 선생이 동리정사를 짓고 제자를 양성할 때 암행어사 어인중이 고창에 내려왔다. 신재효 선생의 신분은 중인이었기 때문에 집을 크게 지을 수도, 기와를 쓸 수도 없으며 둥근 기둥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동리정사는 크고, 둥근 기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인중 어사가 백성들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저 집은 도대체 누구의 집이기에 집이 저리 큰가?" 그러자 백성들이 "저 집은 동리 선생의 집인데, 백성들을 잘 돕고 착한 분입니다."라고 답했단다. 어사는 나그네인 척 변장하고 동리정사를 찾아갔다. 어사가 하룻밤 묵는 동안 동리 선생은 암행어사인 줄 모르고 잘 대접해주었다고 한다. 동리 선생의 사람 됨됨이를 알게 된 어인중 어사는 자신이 암행어사임을 밝히고, 앞쪽의 기둥을 네모기둥으로 바꿔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동리정사 사랑채의 기둥은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판소리 박물관

고창 판소리 박물관은 판소리 전통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2001년 6월 동리정사 터에 개관했다. 판소리 박물관은 혼·발림·아니리·소리·멋 5개의 마당과 명예의 전당이 있는 1층, 그리고 2층 기획전시실로 구성된다. 명예의 전당에서는 판소리 민화와 명창들의 사진, 소리마당에서는 판소리의 유래와 유파 설명, 판소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아니리 마당에서는 신재효 선생의 업적과 도리화가에 얽힌 사랑 이야기를 살펴보고, 발림마당에서는 판소리 체험을 해볼 수 있다. 별관인 고창군립미술관도 방문해 볼 만하다.

개관시간은 동절기 오전 9시~오후 5시, 하절기에는 오후 6시까지다. 휴관일은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 입장요금은 12세 이하 어린이 무료, 13~19세 청소년·군인 500원, 20~64세 800원, 65세 이상 무료다. 자세한 사항은 고창판소리박물관 홈페이지(http://pansorimuseum.gochang.go.kr/index.gochang)를 참조하거나 063-560-8061~4로 문의하면 된다.

동리 신재효 묘소

동리 신재효 선생의 묘

표지판이 없어 자칫 잘못하면 길을 헤맬 수 있다. 안내판이 필요해보인다.


동리 신재효 선생 묘소는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에 있다. 성두리 성두마을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신재효 선생 묘소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성두마을 입구에서부터 신재효 선생 묘소까지 가는 길에는 표지판이 3개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표지판 사이에 거리가 너무 멀어, 처음 오는 사람을 쉬이 찾을 수가 없다. 이 기사를 쓰는 기자도 이곳을 찾기 위해 1시간을 헤맸다. 표지판과 표지판 사이에 새로운 표식을 설치했으면 한다.

신재효 선생 묘가 있는 산에도 표지판이 없어 찾기가 힘들다. 우리 문화재를 알리기 위한 고창군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진채선 생가 터

최초의 여류 판소리 명창 진채선 생가 터의 표식


진채선은 영화 도리화가의 주인공이자 최초의 여류명창이다. 무당인 어머니를 따라다니던 진채선은 어깨너머로 배운 소리에 매료되어 동리 신재효 선생을 찾아간다. 조선시대에는 여자들이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재효 선생은 처음에는 ‘여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며 반대했지만, 소리꾼의 자질을 보고 남장을 하고 배울 것을 허락했다.

여성이 소리를 하는 것이 금지되어있던 시대에 진채선은 남장을 하고 소리꾼으로 활약한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여성이 소리를 하는 것이 금지되어있던 시대에 진채선은 남장을 하고 소리꾼으로 활약한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진채선은 남장을 하고 경복궁 낙성연에서 소리꾼으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그 당시 진채선의 소리는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대원군의 눈에 든 진채선은 대령 기생이 되었다. 신재효 선생은 진채선을 기다리며 도리화가를 지었다고 한다. 진채선은 대원군 집권 말기에 사라졌고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진채선의 생가 터 골목길에는 진채선을 그린 벽화가 있으니 벽화 앞에서 인증 샷을 찍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진채선 생가 터가 있는 골목 엔 진채선을 그린 벽화가 있다.

진채선 생가 터가 있는 골목 엔 진채선을 그린 벽화가 있다.


우리 전통의 소리인 판소리의 발자취를 알 수 있는 고창 판소리 여행, 유익하고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특히 영화 도리화가를 감상하고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사진=정바울(전북사대부고2) TONG청소년기자, 청소년사회문제연구소 전북사대부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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