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진화하는 미국 갑부들의 정치투자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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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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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은 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가
대럴 M 웨스트 지음
홍지수 옮김, 원더박스
368쪽, 1만7000원

과거엔 TV광고 통해 영향력 확대
요즘은 자선단체·상원에 공 들여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다. 민(民) 중에서 부자들은 선거를 통해 주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민심·천심을 어느 정도까지 좌우할 수 있을까.

『부자들은 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가』의 원제는 『억만장자들: 최상위 계급에 대한 성찰(Billionaires: Reflections on the Upper Crust)』이다. ‘어퍼 크러스트(upper crust)’는 최고의 부와 권력을 향유하는 사회 계급이다. 피라미드 꼭대기의 1%를 차지한 그들은 미국에서 부(富)의 3분의 1을 가졌다. 이 책의 주제는 ‘갑부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느냐’다. 미국식 정경유착의 현장을 해부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건강 상태를 짚어본 책이다. 건강성도 발견된다. ‘정치 투자’ 세계의 큰 손이건 개미이건 규칙의 유지나 변경을 위해 투자한다. 탈법은 시도하지 않는다. 그들의 정치 참여 이유는 이익 못지 않게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미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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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억만장자들은 왜 정치 권력에도 큰 관심을 가지는 걸까. 왼쪽부터 톰 스타이어, 조지 소로스, 마이클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중앙포토]

미국은 적어도 아직은 금권정치국가(plutocracy)가 아니다. 저자 에 따르면 갑부들 마음이 곧 민심은 아니다. 당락에 영향을 주지만 결정하지는 못한다. 예컨대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려던 코크 형제의 시도는 좌절됐다. 3000만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정치헌금의 세계에는 큰 손만 있는 게 아니다. 20~30 달러씩 내면서 버니 샌더스를 응원하는 개미 투자자들도 있다.

미국은 양성화를 잘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음지에 속한 것을 양지로 끌어내 통제한다. 선거자금의 세계도 대체적으로 투명하다. 웨스트가 우려하는 것은 지난 30여 년간 초특급 갑부들의 정치 투자에 사각(死角) 지대가 생겼다는 것이다.

공화당 못지 않게 민주당도 억만장자들에게 구애한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선두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도 부자들과 친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양심적인’ 부자들이다. 그들은 미국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 우려하고 선제적으로 불평등 문제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부자다. 부자는 부자다. 좌우로 나뉜 서민 유권자들과는 달리 이들의 생각은 예상 외로 동질적이라는 것을 저자 웨스트가 지적한다. 돈을 받는 순간 미국 민주당은, 좌파건 우파건 모든 부자들이 싫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줄이게 된다.

저자는 초특급 갑부들의 정치 영향력 증진 전략이 어떻게 계속 진화하는지 추적한다. 과거에 이들은 TV 광고에 집중했다. 자선단체를 만들어 정치적 영향력을 도모하는 게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또 이들은 상원의원들에게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상원의원 한 명만 ‘포섭’해도 법안의 통과를 질질 끌 수 있기 때문이다.

163~236쪽은 세계 1645명 거부들의 세계를 해부했다. 자기계발서 용도로 응용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웨스트는 브루킹스연구소의 가버넌스연구 담당 부소장이다. 어렸을 때 오하이오주에 있는 농가에서 자랐다. 집에 수돗물이 들어오고 실내 화장실이 생기는 과정을 지켜보며 컸다. 브루킹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로 손꼽힌다.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민주·공화 양당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사회에서는 대체적으로 리버럴(liberal) 편향이라고 본다. 이를 감안하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정치에 냉소적인 대중, 정치를 중시하는 부유층

『부자들은 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가』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억만장자들의 정치 활동을 최초로 분석한 책이다. 우리 상황에도 적용성이 큰 내용 2개를 뽑아봤다.

- 부유층은 정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인식하고 있다. 정치에 참여하면 이득을 보고 스스로 견해를 표출하는 한편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냉소적인 일반 대중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도긴개긴이고 정치를 통해 변화를 이루기는 요원하다고 본다. 부유층은 정치를 매우 중요시하고 국가적·세계적 영향을 미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 부의 창출은 개인의 창의적 주도력, 장기적 비전, 근면성실함, 적절한 시기 포착, 교육의 기회, 사회적 인맥, 정부의 지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서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수성가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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