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진단] 마지막 이닝…침체냐 소프트패치냐

중앙일보

입력

‘마지막 이닝(final inning).’ 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글로벌 경제가 확장 국면의 끝단에 접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어떤 경제 전문가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미국 금융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최근 설문조사한 펀드 매니저 200여 명이 내린 경기 진단이다. BOA는 “설문에 응한 펀드 매니저 가운데 59%가 ‘지금은 경기 변동 흐름에서 후기 사이클(late-cycle)’이라고 응답했다”고 16일(현지시간) 발표했다.

BOA는 경기를 초기(early)·중기(mid)·후기(late) 사이클로 구분해 진단한다. 후기 다음은 침체다. BOA는 “후기 사이클에선 성장률이 떨어지고 신용(빚) 공급과 수요가 줄고 기업의 재고투자가 감소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현재 상황은 미국발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여름과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올해도 3개월이 지나간다. 1분기를 겪으면서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한 전망을 수정하거나, 아예 새로 내놓게 된다. 이달 들어서 미국·일본·유로존의 중앙은행은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중국은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개최해 세계 경제 점검과 향후 정책 방향 등을 논의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분석한 올해 글로벌 경제 전망치와 유사하다. IMF는 올해 글로벌 경제성장 전망치를 3~3.4%로 낮췄다. 중국의 둔화, 유럽·일본의 부진, 미국 경제의 활력 감소 등이 하향 조정의 이유였다.

블룸버그 통신은 현재의 경기를 “침체 직전”이라고 평했다.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기준으로 보면 거의 8년 만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8년은 짧은 기간이 아니다. 금융위기 전문가인 고(故) 찰스 킨들버거 전 MIT대 교수의 집계에 따르면 세계 경제는 1640년 튤립버블 붕괴 이후 376년 사이에 주요 침체(위기)가 40차례 정도 발생했다. 평균 9년에 한번은 세계 경제가 홍역을 앓았던 셈이다.

그 사이 일본뿐 아니라 미국도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미국은 1873~1893년에 만성 디플레이션이 낳은 ‘장기 공황(Long Depression)’에 허덕였다. 거품이 갑작스럽게 파열한 뒤 돈의 공급이 줄고 과잉?중복 투자가 빠르게 해결되지 않아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블로그를 통해 “1990년대 이후 침체(위기)가 찾아오는 기간이 짧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94년 멕시코 사태,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1년 닷컴거품 붕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잇달았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사모펀드인 칼라일의 최고경영자(CEO)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지난해 말부터 “침체나 위기가 올 때가 됐다”고 되풀이 말하고 있다.

요즘 글로벌 경제 증상은 복합적이다. 신흥국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자본이탈이 나타나고 있다. 양적 완화(QE)로 8조 달러(약 9600조원) 이상이 풀렸는데도 물가는 디플레이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출고가(생산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3월 이후 48개월째 마이너스(디플레이션)다. 선진국 경제는 여전히 좋지 않아 한국?중국?일본의 수출이 시원찮다.

이런 때 주요국 대응이 물길을 결정하곤 했다. 효과적으로 대응하면 침체가 아닌 소프트 패치(일시적 조정)에 그쳤다. 1987년 10월 주가 폭락(블랙 먼데이)이 찻잔 속 태풍에 머물렀던 게 예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편법까지 동원해 증권사 등에 돈을 퍼붓고 적절하게 기준금리를 낮춘 결과였다.

하지만 통화정책의 약발은 다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그린스펀식) 통화정책의 효과가 사그라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바람에 유럽·일본 등은 마이너스 금리 채택이라는 진기한 실험을 하고 있다.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위기 대책의 또 다른 축인 재정정책은 정치인들의 리더십 부재란 덫에 걸려 있다. 톰슨로이터는 최근 전문가의 말을 빌려“공공 투자를 늘리고 시장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불필요한 법규와 불공정 행위)을 허무는 게 절실한 데 주요국에서 이를 밀고 나갈 리더십이 사실상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결국은 리더십을 복원하는 게 급선무다. 강력한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최소한 소프트 패치 국면으로 이끌기 위한 리더십이 나와야만 글로벌 경제는 침체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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