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아쉬움, 놀라움, 그리고 착잡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 아쉬움

1차 투표에서 3표만 더 얻었더라면 그걸로 끝이었다. 2차 투표에서도 3표차였다. 2명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만 더 끌어들였으면 역전이었다. 모두가 아쉬워했다. 이 아쉬움은 '산골 마을' 평창의 선전을 치하하고 관계자들의 노고를 격려한 뒤 4년 후를 기약하는 쪽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실제로 사회 분위기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당초부터 승산이 크다고 본 게임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열악한 여건 속에서 평창은 기대 이상으로 분투했다. 찾아야 할 '희생양'이나 사냥해야 할 '마녀'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 놀라움

"여건이 참 안 좋아. 밀어붙인다고 다 될 것 같으면야…" "지금에 와서 나보고 앞장서 달라는데, 빈손으로 앞장서나? 그런 게 그냥 되는 일이야?" "누구, 누구, 누구, 중구난방 덤비는데, 참 한심해. 자기네들이 스포츠를 알아, 그렇다고 IOC를 알아…. "

김운용(金雲龍) IOC 위원에게서 직접 들었던 말이다. 金위원은 프라하 총회가 있기 훨씬 전부터 평창의 올림픽 유치 활동과 관련해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유치단에 대한 불만이 컸던 게 확실했다. 자신이 유치단 활동의 중심에 있지 못하는 데 대해 못마땅해 하고 있었음도 확실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가 '어디, 나 없이도 잘되는가 보자'는 편협한 마음으로 현지에서 일종의 사보타주를 한 게 아닌가 추측했다.

그런데 그런 정도가 아니라고 했다. 한나라당 김용학(金龍學)의원이 제기한 것은 'IOC 부위원장 당선을 염두에 둔 찬물 끼얹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국의 원로 스포츠인이자 국제적인 스포츠 거목이 설마 자국의 올림픽 유치에 방해되는 일을 하려고? 그러나 불행히도 이와 관련해 무시해버릴 수 없는 정황 증거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다. 실로 놀랄 일이다.

#. 착잡함

金위원은 세계태권도연맹과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를 이끌고 있다. 18년째 IOC 위원으로 있고, 2001년에는 위원장 자리에까지 도전했다. 한국 스포츠계에서 다시 내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주변은 갖가지 추문과 스캔들로 범벅이 돼 있다. 태권도연맹의 단증 심사와 관련한 금품수수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유치와 얽혀 있는 아들의 취직 스캔들 등등 열거하자면 다섯 손가락이 부족하다. 그는 이를 모두 음모와 흑색선전으로 일축한다. 결코 '부덕의 소치'가 아니다. 그렇다면 하고 많은 스포츠계의 거물들 가운데 유독 그에게만 이런 일이 빈발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앞장서서 보호해야 마땅할 세계적 인물을 오히려 앞장서서 나무랄 수밖에 없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하다.

이번 사안의 초점은 결국 金위원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국가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했는지다. 그러나 그가 완강히 부인하는 한 진상은 쉽게 밝혀지지 않을 것 같다. 설령 金위원이 비애국적인 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부분 부작위(不作爲)에 의해 은밀히 이뤄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비밀성과 폐쇄성으로 인해 '스포츠 마피아'소리까지 듣는 IOC 쪽에서 속 시원한 설명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엉뚱하게 정치적으로 덧칠이 가해져 본질이 변모해갈지도 모른다. 벌써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한나라당이, 민주당이 어떻고 하는 얘기가 나돈다. 2014년 유치 문제와 결부해 강원도가, 전북이 어쩌고 하는 말들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더더욱 착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동균 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