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기자들 바보 같다” 연일 언론 탓한 이한구 12년 전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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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0일 오후 2시30분쯤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6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이 왜 이렇게 바보 같애!”

1시간 전 채널A는 그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몰래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 위원장은 사실인지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역정부터 냈다. 그러곤 선 채로 5분 동안 반말 섞인 훈계를 늘어놓았다.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마” “찌라시(사설 정보지) 갖고 얘기하지 말라고”…. 그는 끝내 기자들에게 현 수석과 만났는지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

“현기환 만났나” 질문에 역정만
노무현 때 언론 탓 이해찬에겐
이 “독재자의 사고 방식” 비판

11일에도 이 위원장의 ‘언론 비판’은 계속됐다. 공천관리위원회가 위원장 독단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한 공천위 관계자 발언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들에게 “기자들이 그게 뭐야. 한 사람 얘기하면 그냥 다 따라가고…”라고 쏘아붙였다. 비박근혜계인 황진하 사무총장과 홍문표 사무부총장이 전날 밤 기자회견에서 말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데 대한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이 독단적으로 위원회를 이끌고 있다는 비판은 두 비박계 인사들만의 토로가 아니었다. 계파를 불문하고 일부 공천위 관계자들은 “현재 공천위 운영을 보고 있자면 ‘내가 왜 여기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공천위 주변에선 “심사를 언제 시작해 어느 지역구까지 할지 등은 이 위원장이 혼자 결정한다” “위원회 결정사항을 발표할 때면 이 위원장이 무조건 ‘내가 한다’며 기회를 독점한다” “이 위원장이 공천신청자 관련 정보들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등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만큼 기자들이 현 수석과의 만남에 대해 확인을 요청한 건 단순한 ‘스토킹’이 아니었다.

이 위원장은 지난 7일 최고위원회가 호출하자 “처음이니 예의상 왔다. 공천위의 독립성을 위해 다시는 부르지 말라”고 일갈한 일이 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이 청와대 정무수석과 비밀리에 만나왔다면 그가 강조해온 ‘공천위의 독립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손’ 논란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위원장은 11일 3차 공천안 발표 뒤 한 기자가 “외부 공관위원들 접촉이 쉽지 않다”고 토로하자 “재주껏 하라”고도 일갈했다. 새누리당 출입기자들은 요즘 공천 발표를 받아쓰기 해야 하는 처지다. 어느 후보가 왜 탈락했고, 공천 기준이 뭔지 “알 필요가 없다”는 공박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이 위원장은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었다. 당시 그는 ‘언론 탓’을 하던 이해찬 국무총리를 ‘속시원하게’ 비판했다.

(총리가) 자기 제어력을 상실하고 북한 정책당국자 수준의 적대감을 표출했다. 국민의 뜻을 충실히 전달하려는 언론의 의견을 따르는 것을 굴복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독재자의 사고방식이다.”(2004년 10월 20일)

12년이 지난 지금 “독재자의 사고방식”이란 비판은 그에게 날아들고 있다.

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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