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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풀어 밀실 탈출하는 카페 “주말엔 2주 전 예약해야 할 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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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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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탈출카페가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밀실 탈출 매니어인 노영욱씨가 서울 대학로의 탈출카페 키이스케이프를 찾았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쯤 되면 대세라 불릴 만하다. 최근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추리 열풍 얘기다. 미제 사건을 다룬 드라마인 tvN ‘시그널’부터 밀실 탈출 예능을 표방한 JTBC ‘코드’, 실제 부산 경찰과 추격전을 벌인 MBC ‘무한도전’까지 콘텐트의 추리 접목 방식도 다양하다. 기존 로맨스 드라마에 추리 코드를 섞은 ‘로맨스릴러’도 나왔다(‘치즈 인더 트랩’ 등). 화제 속에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도 남편 찾기라는 추리 요소를 통해 시청자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세상 속으로] 추리에 빠진 사람들
소수 매니어서 대중으로 인기 확산
인터넷 추리 동호회에 수만 명 활동
탈옥 등 실제사건 미션 줘 긴장감 높여

현실에서 추리에 참여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젊은 층의 신(新)놀이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는 ‘방 탈출 카페’가 대표적이다. 방 탈출 카페는 정해진 시간 안에 암호를 풀고 밀실을 빠져나가는 게임을 즐기는 곳이다. 젊은 층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에 처음으로 문을 연 지 1년도 안 돼 전국 50여 곳으로 늘었다.

서울 대학로의 방 탈출 카페 ‘키이스케이프’를 운영하는 천동혁 대표는 “요즘엔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오는 부모들도 있어 주말엔 2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라며 “밀실 탈출 과정에서 팀원 간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직장인들의 워크숍 장소로도 활용된다”고 말했다.

추리를 소재로 한 인터넷 동호회 활동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2006년 개설된 RS추리동호회의 경우 최근 1년 새 5000명 이상이 가입하면서 회원 수가 2만8000명으로 늘었다. 추리 소재도 다양해졌다. 휴대전화 배경이나 집안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서로 신상이나 성격을 추리하기도 한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문제 해결 자체에 흥미를 갖는다”며 “특히 범죄나 추리소설 속에 나오는 상황에 직접 처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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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동호회 운영자인 이정호씨(가운데)가 서울의 한 공원에 가상으로 꾸민 살인사건 현장에서 회원들과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 RS추리연구소]

◆방 탈출에 빠져 직접 밀실까지 설계=“철커덕!” 어두컴컴한 방 안. 문이 잠기고 벽에 걸린 시계의 숫자가 줄어든다. 방에는 기자와 취업준비생인 이세웅(27)씨 둘뿐이다. 제한시간은 60분. 우연히 발견한 북한 간첩의 방에서 증거를 찾아내고 암호를 풀어 밀실을 빠져나가는 게 미션이다. 시간이 초과되면 실패로 간주돼 밖에서 문을 열어준다. 탐정이 된 둘은 손전등으로 방안 구석구석을 비추며 숨겨진 단서를 풀기 시작했다. 시간이 줄어들수록 심장이 조여오는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의미의 기호들을 메모지에 적어 이리저리 조합해보고, 퍼즐 조각을 맞추듯 하나둘씩 암호를 풀어나갔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단서를 발견했을 땐 저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게임 종료 20분을 남기고 마지막 관문인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아냈고, 그 안에 있는 디지털 키로 방문을 열 수 있었다. 이씨는 “늘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까지 놓아두고 방에 들어와 추리에 빠지다 보면 또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라며 “단서를 풀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도 크고 취업 스트레스까지 잊게 된다”고 말했다.

학원 수학강사인 노영욱(27)씨는 전국의 방 탈출 카페를 찾아다니며 인터넷에 후기를 올리는 게 취미일 정도로 밀실 탈출 매니어다. 노씨는 “방 탈출 카페가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다니기 시작해 30개 넘는 밀실에서 탈출에 성공했다”며 “시작 18분 만에 문을 열고 나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방 탈출 카페 측의 요청으로 제작에도 참여해 지금까지 8개 밀실의 트릭을 직접 디자인했다. 그는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방을 설계한다고 했다.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알려진 미국의 앨커트래즈 감옥에서 1962년 3명의 죄수가 탈옥하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했어요. 당시 사건을 토대로 앨커트래즈 감옥에서 탈출하는 미션을 주는 식으로 방 탈출의 긴장감을 높였죠.”

노씨는 “과거엔 추리가 소수 매니어만 즐기던 ‘덕질’(특정 분야에 심취하는 행위)이었다면 방 탈출 카페를 통해 이제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 취미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RS추리동호회 운영자이기도 하다.

회원들은 추리력 수준에 따라 가장 낮은 C등급에서 B, A를 거쳐 최고인 S등급까지 4단계로 나뉜다. 한 단계 높은 등급에 올라가려면 승급시험을 봐야 하는데, S등급은 회원 중에 15명밖에 없을 정도로 고난도의 문제 풀이 능력을 요한다. 전 회원 대상으로 1년에 두 번 오프라인 정기모임을 여는데, 이때 참가자들은 접선 장소까지 추리를 통해 알아내야 한다. 이를 테면 공개된 영상의 배경음악에 모스부호를 넣어 접선방법을 알려주는 식이다. 노씨는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도와 접근법으로 관찰하는 데서 추리가 시작된다”고 소개했다.

◆미제 사건까지 추적 … 한국의 셜록 홈스를 꿈꾼다=단순한 놀이를 넘어 실제로 일어난 범죄나 풀리지 않은 미제 사건을 추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추리를 시작했다는 이정호(24)씨는 낮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지만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은 추리에 빠져서 지낸다. 그가 운영하는 추리동호회에선 화성 연쇄 살인 사건 등 실제 사건을 놓고 추리를 펼친다. 이씨는 “완전범죄는 무관심에서 비롯된다”며 “사건이 많이 알려질수록 그만큼 해결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미제 사건을 꾸준히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회원 중에는 실제 법의학을 공부하는 의대생도 있다고 한다.

이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2006년 발생한 ‘전북대 여대생 실종 사건’을 꼽았다. 수의학과 4학년 이윤희(당시 29세)씨가 혼자 살던 원룸에 귀가한 뒤 실종된 사건이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이씨는 각종 의문점을 토대로 한 달 동안 추리를 했고, 여기서 끌어낸 가설들을 담당 경찰서에 제보하기도 했다. 그는 “범인을 잡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10년째 오리무중이라 안타깝다”고 했다.

일상에서 너무 동떨어진 취미는 아닐까. 기자의 의구심을 읽었는지 그가 “최근 실제로 겪은 일”이라며 질문을 던졌다. “출근길에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는데 입구를 다른 차가 막고 있어요. 차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답변을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가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차를 ‘스누핑(Snooping·염탐)’하는 거였어요. 추리 기법 중 하나로 대상을 관찰하는 거죠. 차 안을 살펴보니 담뱃갑이 눈에 띄었어요. 차 주인이 흡연자라면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겠죠. 빌라는 총 6개 동이었는데 주변을 뒤지다가 같은 제품의 담배 꽁초를 발견했어요. 바로 그 건물 안에 들어가 아래층부터 문을 두드렸고, 두 번째 만에 차 주인을 찾았죠. 실생활에서도 이렇게 추리를 응용할 수 있어요.”

그의 희망은 셜록 홈스 같은 사립 탐정이 되는 것이다. 경험을 쌓기 위해 흥신소에서 2년쯤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사립 탐정(또는 민간 조사관)은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민간 조사업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1999년부터 여러 차례 상정됐지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 때문이다. 이씨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에서 사립 탐정이 불법인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며 “추리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가 대중화된 만큼 탐정이란 직업도 양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누구나 알 수는 없는 것”이라는 게 그가 말하는 추리의 매력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2030세대들은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이나 게임을 하면서 강한 자극을 받아왔기 때문에 추리 같은 복잡한 놀이를 즐기는 문화에 익숙하다”며 “과거엔 TV프로그램이나 영화를 통해 보고 즐기기만 했다면 이제는 ‘나도 직접 추리를 해보고 싶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천권필·김영민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대학 화학 실험실에 변사체 … 용의자 3명 중 범인 추리해 보세요

“모든 불가능한 것들을 제거하면 마지막에 남는 게 아무리 믿기지 않는 것이라 해도 진실이다.”

명탐정 셜록 홈스가 남긴 명대사다. 당신은 이제 진실을 밝히기 위한 탐정이 돼야 한다. 당신의 추리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두 문제를 준비했다.

첫 번째 문제. A호텔의 VIP룸에서 한 남성이 책상 위에 엎드려 죽은 채 발견됐다. 피해자의 왼손에는 권총이 쥐여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테이프 녹음기가 있었다. 현장을 조사하던 요원들이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르자 “이제는 내게 살 희망이 없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걸 잃었기에 나는 이러한 결정을 내린다”라는 굵은 목소리가 나오고 이어 곧바로 ‘탕’하는 총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녹음이 끝나버렸다. 사건 브리핑을 듣던 탐정은 “자살이 아닐 수 있으니 피해자의 주변 인물부터 수사를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 탐정이 재조사를 지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번째 문제. 난이도가 더 높다. B대학의 화학 실험실에서 한 여성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들은 총 3명. 피해자는 죽기 전 ‘다잉 메시지’를 남겼는데, 이것이다. <6 1 8>

다음은 용의자들의 진술이다.

▶ 이정수 : 그녀와 같이 수업을 들었지만 수업이 끝나고 계속 집에 있었습니다.
▶ 조현민 : 그 시각 수업이 휴강돼 혼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 박주영 : 과 행사가 있어서 계속 동기들과 같이 있었습니다.

다잉 메시지는 무슨 의미이며, 범인은 누구일까. (정답은 지면 하단에)

●정답(도움말: RS 추리 동호회, 방탈출 제작대행 RS 프로젝트)

1. 만약 자살이라면 녹음 버튼을 누르고 나서 사망한 후 피해자는 녹음기에 손을 댈 수가 없다. 하지만 녹음기를 틀자마자 녹음된 내용이 바로 나왔으니 누군가 다시 녹음의 시작 부분으로 감아놓았다는 뜻이 된다.

2. 다잉 메시지를 풀 단서는 '화학 실험실'이다. 주기율표의 원자 번호를 숫자와 연결해 보자. 원자 번호 6번은 탄소(C), 1번은 수소(H), 8번은 산소(O), 합치면 CHO(조)가 된다. 즉 범인은 '조'씨 성을 가진 조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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