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알파고의 도전, 인공지능 산업 발전의 전기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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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내일부터 5일 연속 맞대결을 펼친다. 비록 바둑이라는 분야에 한정돼 있지만 AI가 인간과 대등하게 겨룰 정도가 된 것이다. 알파고는 이미 다른 바둑프로그램을 압도하고 유럽 챔피언을 5대 0으로 완파했다. 이후에도 ‘강화학습’이라는 과정을 통해 실력을 키우고 있다. 그래선지 적지 않은 프로기사가 ‘이세돌 우세’를 점치면서도 확신하진 못하고 있다.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형세판단이나 두터움까지 알파고가 헤아린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AI의 발전 속도
생활과 경제를 바꿀 주역으로 떠올라
이세돌과 대국 계기로 선진국 따라잡길

승패는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게 있다. AI의 발전 속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한참 빠르다는 점이다. IBM이 개발한 ‘딥블루’는 1997년 인간 체스 세계 챔피언을 물리치며 AI의 잠재력을 과시했다. 같은 회사가 개발한 ‘왓슨’은 2011년 미국의 인기 프로그램에서 인간 달인들을 모두 꺾고 ‘퀴즈의 제왕’이 됐다. AI가 체스와 퀴즈를 정복하는 데 각각 30년, 7년이 걸렸다고 한다. 알파고의 등장은 바둑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인간을 능가하는 바둑 알고리즘은 100년 내에 나오기 어렵다”(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고 예측해왔다. 바둑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우주에 있는 원자 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세감각, 승부수, 패처럼 수치화하기 어려운 측면도 많다. 하지만 이번 대국을 앞두고 “생각을 바꿨다”는 프로기사와 전문가가 많아지고 있다.

알파고가 던진 화두는 결코 가볍지 않다. AI가 궁극적으로 인간처럼 인지하고 판단하는 초지능으로 발전하리란 전망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이미 인간다움에 대한 정의,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둘러싼 논란이 촉발되고 있다. AI가 개인 생활은 물론 정치와 사회구조까지 바꿀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런 AI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러려면 AI에 대한 연구와 기술개발이 충분히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이 방면에서 한국은 미국 선도 기업들에 한참 뒤처져 있다. 구글과 IBM은 물론 MS와 애플·페이스북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이에 적절한 대답을 해주는 AI 기술을 실용화하고 있다. 최근 열린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와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박람회(CES)에서도 가상현실(VR) 기술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도 삼성전자가 페이스북과의 VR 기술개발 협력을 발표한 걸 빼면 AI 분야에서 국내 기업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AI의 미래를 단정할 수 없다. 인간에게 도움이 될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판단하려면 AI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연구개발 자체가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불러온 뜨거운 관심이 한국 AI 산업 발전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