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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늘자 분양 조건 좋아진 아파트, 살까? 말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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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금이 1000만원이어서 여윳돈으로 계약할 수 있고, 중도금 무이자여서 입주 때까지 추가로 돈 들일 없고. 어라, 분양가도 깎아준다네."

주택경기가 꺾이면서 팔리지 않는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늘고 있다. 지난해 말 한 달새 20%가량 급증하다 올 들어 다시 증가세가 주춤해지긴 했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연말연시 분양물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달부터 봄을 맞아 대거 쏟아질 예정이어서 미분양은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올 들어 청약률이 떨어지며 분양시장을 찾는 수요자도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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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과잉 우려 속에 주택건설업체들도 조기에 계약률을 높이고 싶어한다.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미분양 뿐 아니라 잠재적인 미분양을 줄이기 위해 ‘미분양 마케팅’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분양 마케팅을 보면 시장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주택건설업체는 분양 자신감에 따라 다양한 마케팅 기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한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음에 써먹을 ‘히든 카드’를 갖고 있다. 시장 상황이 나빠질수록 더 대범해진다.

①”부담 없이 계약하세요”
미분양 걱정이 없는 호경기 땐 계약금이 대개 분양가의 20%를 차지한다. 분양가가 3억원이면 6000만원이다. 웬만한 집에서 싸놓고 있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대출받을 수밖에 없다. 꼭 분양 받고 싶지 않으면 대출 받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미분양이 우려되면 업체는 우선 계약금을 줄인다. 10%로 비중을 낮추고 그나마도 5%씩 두 차례 나눠 받기도 한다. 1차 계약 만으로 계약은 성사된다. 아예 1000만원 등 10%에도 미치지 않는 소액만 받기도 한다. 업계는 이를 ‘계약금정액제’라고 한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분양 중인 래미안 파크스위트는 계약금을 분양가의 10%로 정하면서 1차 계약금 1000만원과 2차 나머지로 나눠 받는다. 2차 계약금은 1차를 낸 뒤 30일 이내에 내면 된다. 주택형, 분양가에 상관 없이 1000만원만 내면 계약할 수 있다. 인천시 서구 가좌동 인천가좌 두산위브는 최근 ‘계약금 1000만원 정액제’로 계약조건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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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의동에 분양 중인 래미안 파크스위트는 1차 계약금을 1000만원 만 받는다. 총 계약금은 분양가의 10%지만 `흥행`을 위해 1차 계약금을 대폭 낮췄다. 위는 조감도, 아래는 1차 계약금을 소개한 책자.

업체들이 적은 금액으로라도 계약률을 높이려는 이유는 계약금을 내면 물고기가 미끼를 물어 낚시에 걸리듯 소비자가 ‘낚이기’ 때문이다. 계약만 하면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지하고 싶어도 쉽게 못한다. 중도금을 한차례라도 내면 업체 측의 동의가 있어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런데 중도금은 집단대출로 계약자도 모르는 사이 자동으로 업체 측에 납부된다. 사실상 계약만 하면 그냥 중도금 납입으로 이어져 계약자가 어찌하기 어렵다.

②”중도금 이자 내드립니다”
중도금은 분양가의 50~70%를 차지하는 상당한 금액이다. 금리가 낮더라도 이자 총액이 만만찮다. 이자여서 월세처럼 빠져나가기 때문에 가계지출이 늘어나는 셈이다.

업체들은 이자 부담을 줄어준다는 명목으로 입주 때 몰아서 받는 ‘이자 후불제’를 쓴다. ‘조삼모사’다. 입주까지는 부담이 없어도 입주 때 내야 할 돈이 수천만원 더 많아진다.

그렇더라도 이자 후불제의 이점이 있다. 입주 전에 분양권을 팔 생각이라면 중도금 이자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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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에 분양 중인 프로지오는 후불제였던 중도금 이자를 완전히 없앴다.

업체들은 이도 자신 없으면 아예 이자를 대주겠다는 ‘중도금 무이자’ 카드를 꺼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분양가에 이자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만큼 업체 측 이익이 줄어든다.

경기 안성시 안성 푸르지오는 당초 중도금 이자 후불제에서 중도금 무이자로 조건을 변경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아이파크도 중도금에 당초 이자후불제를 적용했다가 미분양이 길어지면서 무이자로 바꿨다.

③”거저 ‘덤’으로 드려요”
유상옵션으로 팔던 에어컨·냉장고·식기세척기 등 값비싼 가전제품을 무상으로 주겠다고도 한다. 비용이 수백만원 드는 발코니 확장을 무료로 해주기도 한다. 끼워 팔던 물건을 그냥 덤으로 얹어주는 셈이다. 돈으로 받지 않고 이것저것 얹어주니 소비자가 ‘혹’하기 마련이다. 새 아파트로 들어가면서 돈 들여 장만할 만한 가전제품 등을 거저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다.
근사한 인테리어를 무상으로 시공해주기도 한다. 침실바닥재·거실아트월·수납장 등 말이다. 중문을 공짜로 설치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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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물량을 털어내기 위한 노력은 콧대 높은 반포라고 예외가 아니다. 반포동 래미안 아이파크는 유상 옵션이던 중문과 오븐·식기세책기 등을 무료로 설치해준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분양 중인 래미안 아이파크는 유사옵션을 무상으로 변경해 중문·오븐·식기세척기·김치냉장고·냉동고 등을 무료로 설치해준다. 중도금 무이자 조건까지 합치면 전용 85㎡형의 경우 계약자가 이득 보는 금액이 3500만원 정도다.

④”아무 걱정 마시라니까요”
‘중도금 내는 동안 금리가 오르면 어쩌나. 입주 후 집값이 분양가보다 내려가면 어쩌나.’

소비자는 불안하다. 그래서 각종 보장제가 동원된다. 금리가 오르더라도 중도금 이자에 기존 금리를 적용하겠다는 ‘대출금리 보장제’.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올해 초 분양된 신반포자이는 ‘대출금리 안심보장제’를 도입해 중도금 대출금리를 올리지 않기로 했다. 미국 금리 인상 여파로 국내에서도 금리가 오르더라도 금리 인상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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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분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자이는 중도금 대출 금리를 올리지 않는 대출 금리 안심보장제를 도입했다. 계약 당시 조건을 보장한 것이다.

중도금 후불제에서 무이자로 바뀌는 등 계약조건이 바뀔 경우 변경된 조건을 적용하는 ‘계약조건 보장제’, 입주 후 집값이 분양가 이하로 내려가면 차액을 지원하겠다는 ‘분양가 보장제' 등도 있다.

⑤그래도 안 되면 “깎아 드립니다”
모든 상품이 그렇듯 아무리 해도 안 팔리면 마지막 수단은 가격 인하다. 분양가 할인 말이다. 할인 전 분양 받은 계약자와 형평성 문제 등으로 몰래 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위기 이후 미분양이 엄청나게 늘었을 때 분양가 할인을 둘러싸고 기존 계약자와 업체 간 갈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몰래 하는 분양가 인하도 먹히지 않으면 대놓고 깎아준다.

래미안 아이파크가 유상옵션을 무상으로 해주고 있다. 잘만 고르면 ‘떨이’ 속에 ‘진주’ 있다.

미분양 물량이라고 상품의 질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양질의 물건 중에도 안 팔리는 경우가 있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 수요자가 덮어 놓고 안 사려고 하다 보니 좋은 물건도 안 팔리곤 한다. 타워팰리스도 처음엔 미분양 몸살을 앓았다.

수요자는 미분양은 쳐다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각종 혜택까지 있으니 평소보다 훨씬 싸게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가치를 보고 주식투자를 하듯 미분양도 조건이 아닌 가치를 보고 계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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