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찜 고기가 약간 팍팍해 보이는데요?"
"맛은 괜찮아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이라 양이 충분한지 봐야겠어요."
지난 2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대진고등학교 지하식당. 4명의 주부들이 곧 배식될 반찬을 앞에 놓고 '맛 토론'을 벌인다.
갈비찜의 빛깔만 보고도 간이 짠지 싱거운지, 오이 무침이 아이들의 입맛을 당길지 아닐지를 한 눈에 척 알아보는 이들은 이 학교 학부모들. 학교 급식의 맛과 위생상태 등을 점검하는 급식 암행어사들이다.
◇엄마는 급식 암행어사= 이 학교 2학년 13반 박수용군의 어머니 한선희씨는 2일 오전 10시 학교에 도착했다. 흰 모자에 흰 가운으로 갈아입은 한씨의 이날 '미션'은 급식 점검표를 따라 하나씩 체크하는 일.
계획된 식단과 메뉴가 일치하는지, 음식의 냄새는 이상하지 않은지… 혹 인공 조미료를 많이 넣지는 않는지를 지켜볼 때는 한씨가 유난히 두 눈을 부릅뜬다.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급식을 챙기니 음식이 맛있고 깨끗해요." 한씨와 한 조가 되어 급식봉사를 하던 박연홍씨도 "엄마들이 나서면서부터 급식의 질이 몇 배나 좋아졌다"고 맞장구를 쳤다.
일산의 명문 사립고로 손꼽히는 대진고. 이 학교의 또 하나의 자랑인 '먹을 만한' 학교 급식은 이처럼 엄마들의 헌신적인 봉사에 의해 조리된다.
매일 오전 8시. 1학년 학부모 엄마 2명이 한 조가 되어 그날 쓰일 급식 재료를 점검한다. 야채와 고기, 후식용 과일까지, 1천5백명의 학생이 하루 두끼를 먹는 엄청난 분량의 재료를 일일이 확인한다.
한우는 2등급 이상, 닭고기는 도축증명서를 제시할 수 있는 업체의 것인지 등. 두시간을 꼬박 하고 나면 이번엔 2학년 엄마들의 차례다. 조리과정과 배식과정을 모니터하는 일이 그들의 임무.
급식에서 이물질이라도 나오면 급식업체에 확인사인을 받고 전 학년의 월 급식비 중 하루치를 빼는 '징계'까지 한다. 3학년 학부모들은 저녁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한 학급의 엄마들이 1년에 일주일만 봉사하면 됩니다. 그러니 한반에서 10명 안팎의 엄마들이 1년에 한두번만 봉사하면 되는 셈이죠." 엄마들의 봉사 조 짜기 등을 총 관리하는 김영희씨는 "여러 사람의 작은 봉사가 이처럼 큰 일을 해낸다"고 뿌듯해했다.
◇엄마들의 급식과의 전쟁= 대진고 엄마들의 급식개선운동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2001년 봄. 학부모회가 결성되면서 엄마들이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위탁급식업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고 학교도 거북스러워했다. 현재 대진고의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인 박은진씨, 지난해 위원장인 김인숙씨 등이 주축이 되어 나섰다.
"전체 학부모 모임.학년모임.반 모임 등을 쉴 새 없이 했어요. 엄마들이 잘 호응해 큰 힘이 됐지요." 엄마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응답자의 80%가 '불만'이라고 응답. 엄마들은 이 결과를 갖고 급식업자와의 협상을 시작했다.
급식과의 전쟁은 2002년 봄, 현 유춘성 교장이 부임하면서 원군을 얻었다. 유교장의 결단으로 강제급식이 희망자 자유급식으로 전환되자 학부모들이 급식불매운동을 벌였던 것.
매일 점심.저녁 도시락을 싸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전 교생의 85%가 이 운동에 동참했다. 결국 급식위탁업자는 한달 만에 손을 들었다.
"선생님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현재와 같은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3년간 이 운동을 이끌었던 박위원장이 학교급식 개선운동을 꿈꾸는 엄마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moonk21@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