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대국할수록 완전체 느낌…압박감 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기사 이미지

지난해 10월 알파고와 대국하는 판후이 2단. 그는 “상대가 동요하지 않는 게 압박으로 다가왔다. 점점 나를 의심한 게 패인이었다”고 말했다. 판 2단은 1996년 중국에서 입단했고 2000년부터 프랑스에서 활동 중이다. 2013~2015년 유럽 바둑 선수권에서 3년 연속 우승했다. [사진 구글 딥마인드]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 Go)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결전의 날이 다가올수록 매일 3만여 대국으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한다는 알파고의 실력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판후이 ‘내가 인공지능에 진 이유’?

 지금까지 알려진 알파고에 대한 정보는 1월 말 딥마인드 측이 공개한 기보 다섯 장이 전부다. 지난해 10월 알파고와 판후이 2단의 대국들이다. 당시 판후이 2단은 알파고에 다섯 판을 내리 졌다.

알파고는 당시 대국을 위해 약 3000만 개의 아마추어 기보를 소화했다. 이후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을 앞두고서는 많은 프로기사의 기보를 습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판후이 2단은 알파고와 공식 대국을 치른 유일한 프로기사다. 지난달 27일부터 중국 장쑤(江蘇)성 화이안(淮安)시에서 열리고 있는 제1회 IMSA 엘리트마인드게임스 바둑 종목에 유럽 대표팀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는 판후이 2단을 e메일 인터뷰했다.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컴퓨터와 바둑을 두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사람과 바둑을 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판후이 2단은 인터뷰 내내 알파고의 실력에 대해 경이로움을 표했다. 그는 “첫 번째 대국이 끝난 뒤 알파고가 전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전략을 바꿔 두 번째 판부터는 공격적으로 대국에 임했지만 결국은 내가 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대국 내내 약간은 특이하지만 아주 강한 기사와 바둑을 두는 느낌이었다”는 소감도 내놨다.

 패인으로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들었다. 판후이 2단은 “ 알파고를 대신해 돌을 놓는 사람이 앞에 앉아 있었지만 대국을 할 때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컸다”고 말했다. 상대의 실체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국을 할수록 알파고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완전체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는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알파고와 판후이 2단의 기보를 본 프로기사들은 판후이가 100%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이현욱 8단은 “판후이 2단이 알파고와 대국하면서 프로기사로서는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자주 저질렀다. 오래 승부를 쉬어 승부 호흡이 떨어졌거나 아니면 커다란 심리적인 동요가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관련 기사
① "알파고, 이세돌에 완승할 것…구글의 인공지능 과시쇼"
② 로봇과의 대결, 아직은 인간이 이겨야 하는 이유



 판후이 2단 역시 이러한 부분을 아쉬워했다. 그는 “대국을 하면서 상대가 전혀 심리 변화가 없다는 게 강하게 느껴졌다. 점점 자신을 의심한 게 가장 큰 패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돌부처’ 이창호 9단처럼 전혀 흔들림 없는 알파고의 기세에 지레 겁먹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에 패배한 뒤 심리적인 충격은 없었을까. 판후이 2단은 “대국이 막 끝나고 나서는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프로기사로서 자신감도 크게 떨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알파고와의 대국 경험이 내 바둑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판후이 2단은 알파고의 장단점과 특징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세돌 9단과의 승부 예측에 대해서도 “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알파고의 테크닉과 관련한 질문에는 일절 답을 해줄 수 없다. 구글 딥마인드 측과 비밀 유지 협약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