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포항의 3억원짜리 새마을 깃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윤호 기자 중앙일보 대구총국장
기사 이미지

김윤호
사회부문 기자

경북 포항시(시장 이강덕)가 3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45m 높이의 새마을운동 깃발 게양대를 9월까지 만들기로 해 예산 낭비 행정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앞세운다. 1970년 4월 시작된 새마을운동 이듬해 당시 박 대통령이 포항시(당시 영일군) 기계면 문성리 일대를 방문해 새마을운동을 모범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시는 이 사실을 근거로 포항이 새마을운동의 선도도시라고 홍보해 왔다.

 값비싼 새마을기 게양대를 굳이 세우려는 이유도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도시 이미지 강화 차원이라고 포항시 측은 주장한다.

 농촌 마을에 세우려는 게양대의 높이는 무려 45m. 여기에 가로 12m, 세로 8m 크기의 초대형 새마을 깃발을 걸겠다는 계획이다. 모터를 따로 붙여 자동으로 깃발이 게양대를 타고 오르내리도록 만들 예정이다. 깃발과 게양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민 세금은 3억원이다.

기사 이미지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게양대 높이를 45m로 만드는 이유도 옹색하다. 시 측은 “박 전 대통령이 포항에 와서 새마을운동을 칭찬한 지 올해로 45년이 지났다는 의미를 녹였다”고 설명했다.

 새마을운동을 앞세운 사업은 이뿐이 아니다. 시는 해외 3개 자매교류 도시에서 유학생을 선발해 1년간 ‘공짜 유학’을 시켜 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중국 훈춘(琿春)과 러시아의 하산·블라디보스토크에서 11명의 유학생이 지난주 입국했다. 이들이 영남대 ‘박정희 새마을대학원’에서 1년간 공부하는 데 들어가는 1인당 학비와 숙식비는 2700만원이다. 약 3억원의 시 예산이 또 나가는 셈이다. 시 측은 “새마을 정신을 세계로 퍼트리고 새마을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유학을 추진했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복덕규 포항시 시의원은 “지역경제가 바닥인데 세금으로 3억원짜리 대형 새마을 깃발을 세우고 3억원을 들여 외국인에게 공짜 유학까지 시켜 주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새마을운동을 내세운 명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새마을운동 마케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에 40여억원을 들여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을 지었다. 2012년에 기념관 옆에 40여억원을 추가로 들여 고택 체험시설인 ‘새마을 인성교육관’을 또 지었다. 정휘 포항 경실련 집행위원장은 “이미 만든 시설도 활용도가 높지 않다”고 꼬집었다.

 포항의 지난해 재정자립도는 36.1%로 전국 평균(50.6%)에 크게 못 미친다. 전시행정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실행정이 가장 필요한 곳이 포항이다. 곳간은 비었는데 명분이나 앞세우는 공무원들부터 새마을운동 정신을 다시 공부해야 할 것 같다.

김윤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