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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주말엔 가족에게 출근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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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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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독일 직장인들은 주말에 출근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에겐 가족이 있다며 이를 거부한다고 한다. 한국 직장인들은 주말에 출근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에겐 가족이 있다며 당연히 나가겠다고 하고. 최근 읽은 우스갯소리다. 웃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그다지 우습지 않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시간외근무를 마다할 수 없다. 가족을 위해선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강고하지 않은 나라에서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기 위해서는 직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회사의 요구 사항에 맞춰줘야만 한다. 그 요구 사항이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회식이나 주말 단체 등산처럼 외견상 형식적으로는 업무가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고용할 때 어지간한 회사라면 고용계약서를 작성할 거라고 믿는데, 고용계약서에 비록 시간외근무에 대해 규정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직장인들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고서야 시간외근무를 하라고 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다며 야근이나 휴일 출근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전에 런던에 진출해 있는 한국 회사와 직원 해고와 관련한 사건을 상담한 적이 있다. 해고를 하고 싶은 주된 사유 중 하나가 해당 직원이 야근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윗사람, 즉 한국에서 파견 나온 법인장 및 주재원들이 집에 가지 못하고 있어도 영국인 직원은 단 하루도 정시를 넘겨 퇴근한 적이 없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딱 컴퓨터를 끄고 나서는데, 한번은 잠깐 더 남아서 마저 업무를 처리하고 가라고 요구했더니 고용계약서에 시간외근무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고 하더라는 거다. 실제로 해당 직원의 고용계약서에는 그런 조항이 없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회사는 해당인에게 정해진 퇴근 시간 이후 남으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알아서 좀 눈치껏 야근도 해주고 하면 좀 좋으련만 영국인 사무 직원이 그럴 리가 없다. 그 점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야근을 하지 않았다는 것, 단지 그 하나만을 이유로는 그를 해고할 수 없다. 영국 고용법 실무상 문제의 소지가 없고자 한다면 해당 직원에게 시간외근무를 시킬 수도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애초에 고용계약서에 그런 조항을 넣었어야 한다. 그런 규정이 없으면 고용계약서에 규정된 근무 시간 이외의 시간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사적인 시간이고 회사엔 그 시간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물론 계약서에 넣는다고 한정 없이 시간외근무를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하니 야근은 주로 사정을 아는 주재원들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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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현대인에게 직장이 단순히 시간 보내고 돈을 벌어 가는 장소만은 아니다. 그 안에서 얻는 성취감이나 자아실현이란 의미도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직장은 목적이 아닌 수단 아닌가. 개인으로 충실히 살아가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수단이다. 근무 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제시간 되면 퇴근해서 스스로를 충전하고 가족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왜 다들 당연한 듯이 야근을 해야 하고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일이 많다면 직원을 더 고용해야 할 일이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면 그냥 앉아서 시간을 때운다는 이야기이니 이는 도무지 건강한 근로 형태라고 할 수가 없다. 영국의 법인은 야근할 만한 업무가 없는데도 한국의 본사 눈치를 보느라 야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때마침 한국경영자총협회도 한국이 몇 년째 최장시간 근로 국가이면서도 생산성은 낮다는 지적을 했다. 경총에 따르면 연장근로가 일자리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취업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장시간 근로를 축소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도한 연장근로의 이유인 높은 연장근무 할증률을 낮추고 연차 휴가를 모두 사용하게 하되 미사용 연차휴가 분에 대해선 금전으로 보상하지 못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경총의 주장이다.

 정말로 연장근로를 소득 증대의 수단으로 보고 여가보다는 수당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돈은 더 안 줘도 좋으니 집에 일찍 보내주고 주말에 나오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더 나아가 연장근무 수당 같은 건 받지 못하면서도 늦게까지 또는 주말에 일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어쨌거나 경영자와 근로자 양측이 모두 과도한 시간외근무가 문제라고 하는 상황이니 해결 방법은 최대한 연장 근무를 줄이는 것이겠다. 경총 말대로라면 일자리까지 늘어나게 된다는 것 아닌가. 충분히 쉬고 자기 시간을 갖고 행복한 가족 생활을 누리는 근로자가 생산성이 높다. 그리고 생산성이 높은 근로자가 근무하는 회사가 잘 돌아간다.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