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더민주 컷오프 시대정신 반영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내놓은 현역의원 공천탈락자 명단은 어느 정도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제1야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명하게 제시했다. 본격적인 공천과정에 들어가기도 전에 10명의 현역을 아예 공천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른바 컷오프 대상자로 발표한 것이다. 컷오프 의원의 숫자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더민주 의원의 정수인 127명의 20%에 해당하는 25명이었다. 그 사이 11명의 의원이 탈당하고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4명의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숫자가 줄어들었다. 10명이란 숫자는 적은 듯 보이나 의미는 크다. 눈에 띄는 인물은 노영민·김현·임수경 의원이다. 이들은 당내 대표적인 친노·운동권 출신이다. 문재인 대표 시절 그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노 의원은 의원실에 신용카드기를 갖다 놓고 자신의 시집을 판매한 이른바 ‘갑질 의원’으로 당원 자격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세월호 국정조사 위원이던 김현 의원은 한밤중 길거리에서 대기하던 대리기사에게 폭언 등을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아 당의 이미지를 깎아 내렸다. 비례대표지만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안산단원갑) 출마에 나섰다. 학생 시절 임종석 전대협 의장의 지시로 밀입북했던 임수경 의원은 대표적인 운동권으로 분류된다. 임 의원은 임기 초 한 주점에서 탈북자와 다투며 ‘배신자 운운’한 게 물의를 빚었다. 컷오프 대상 선정은 지역구의경우 여론조사, 의정(議政)성과, 선거 기여도, 지역구 활동, 동료의원 다면평가 5가지 기준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이들이 어떤 항목에서 문제가 돼 탈락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진 않았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 더민주가 친노패권주의, 운동권 행태에 젖어 나라의 전진과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세 사람의 탈락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노영민·김현·임수경 의원 탈락
운동권·친노패권 흐름의 퇴조
새누리·국민의당도 자극받아야

 친노·운동권 문화는 대체로 자기만이 옳다는 독선에 사로잡혀 길거리 투쟁, 강경 대처에 앞장서고 의회주의의 미덕인 타협과 협상을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적대와 극단, 분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진영논리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더민주는 친노·운동권 적폐를 깨닫는 데 야권의 양분, 문재인 의원의 대표직 사퇴, 김종인 새 대표 체제의 등장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했다. 김종인 대표는 운동권 문화의 청산을 이번 공천의 주요 방향으로 잡았는데 앞으로 정밀조사, 최종심사 과정에서 이를 시대정신으로까지 격상시키길 바란다.

 어제의 컷오프 대상엔 문희상·유인태 의원 같은 괄목할 만한 중진 정치인도 포함됐다. 나름대로 의회주의와 중도진보의 가치를 실천한 공이 있지만 공천개혁과 정치혁신이라는 큰 차원에서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는 공천혁신이라는 면에서 여야 3당 중 가장 앞서가고 있다. 비교적 명확한 기준과 공정성에 근거해 시대정신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파벌싸움에 휩싸이거나 지지부진 상태에 있는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에서도 과감하고 파괴력 있는 물갈이 실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