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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문신으로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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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강정호의 왼 다리. [매커친 트위터 캡쳐]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강정호(29)가 왼 발목 위에 자신의 얼굴을 문신으로 새긴 게 최근 화제였다. 팀 동료 앤드류 매커친(30)은 소셜네트워크시스템(SNS)에 "그 얼굴은 강정호의 쌍둥이 형제 강정노(Jung No Kang)"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사실 발목에 있는 상처를 가리기 위해 문신을 했는데 마땅히 새겨넣을 게 없어서 내 얼굴을 그리게 했다"고 말했다.

스포츠 스타들의 '문신의 심리학'

스포츠 스타들의 몸에 그려진 화려한 문양의 문신은 이제 그리 생경하지 않다. 1990년대부터 미국 프로스포츠 선수들에서는 '스킨스 게임(skin's game)'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신 경쟁이 치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의 거부감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이제 스포츠 선수들은 '몸'이라는 캔버스에 저마다 다른 의미와 가치를 그려넣고 있다.

① 다짐
문신을 할 때는 마취를 하지 않는다. 바늘이 피부를 통과하는 고통을 그대로 느낀다. 그래서 문신을 그리는 행위를 고통을 이기겠다는 다짐으로 여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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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중앙포토

미네소타 트윈스의 박병호(30)는 왼 팔뚝에 타오르는 불꽃이 칼을 감싸고 있는 문양을 그려 넣었다.

그가 첫 홈런왕을 차지한 2012년 초에 새긴 것이다. 만년 유망주에 머물렀던 박병호는 이후 4년 연속 프로야구 홈런왕을 차지하고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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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오른쪽)과 마이크 펠프스. [셀러브리티 타투스 캡쳐]

봅슬레이 국가대표 서영우(25)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을 마치고 발목에 '오륜기' 문신을 새겼다. 서영우는 "발목의 오륜기를 보면서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의 영광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오륜기 문신은 올림피언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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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중앙포토

수영의 박태환(27)과 마이클 펠프스(31·미국)의 오른쪽 옆구리에도 오륜기 문신이 있다.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안현수(31)는 등에 새긴 오륜기와 함께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문구를 새겼다. 러시아로 건너가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했던 다짐을 고스란히 몸에 표현했다.

최영준 고려대 학생상담센터 교수는 "선수들이 문신을 그리는 것은 불안하고 자신감이 떨어질 때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징크스와도 연관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②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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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은. 중앙포토

화려한 문양이 돋보이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문신은 가족과 혈통의 상징이다. 프로야구 한화의 정근우(34)는 왼 팔에 아내와 아들의 이니셜을 적었다. '가족을 위해 늘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다.

일본 프로야구 이대은(27·지바 롯데)은 왼쪽 목에 ‘+CDBJD’라고 쓴 문신이 있다. 크리스천인 그는 십자가를 맨 위에 그렸고, 부모님과 두 누나 이름의 이니셜을 한 자씩 새겼다. 이대은이 힘든 마이너리그 생활을 7년 동안 견뎌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가족이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골프의 버바 왓슨(38·미국)은 아내에 대한 사랑을 문신으로 표현했다. 그는 조지아대 시절 사귄 농구선수 출신 앤지(왓슨)와 2004년 결혼했다. 아내가 뇌질환으로 임신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혼을 결정했다. 두 아이를 입양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는 결혼 10주년에 아내에게 반지를 손에 끼워주고 자신의 약지에는 아내의 이름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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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바 왓슨(위)과 다니엘 아게르의 문신. [셀러브리티 타투스 캡쳐]

③ 정체성
한국계 종합격투기 스타 벤슨 헨더슨(33)은 몸통에 ‘힘’ ‘명예’ 그리고 양팔에 ‘전사’ ‘헨더슨’이라고 한글로 문신을 넣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미국프로풋볼(NFL) 스타 하인즈 워드(40·은퇴)도 오른 팔뚝에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헨더슨과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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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슨 헨더스(왼쪽)-하인즈 워드

정체성의 표현은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덴마크 축구 선수 다니엘 아게르(32)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FC에서 뛸 당시 손가락에 팀의 대표 응원가 제목을 뜻하는 ‘YNWA(You'll Never Walk Alone)'이라는 글자를 넣었다.

영국의 태권도 대표선수 사라 스티븐슨(23)은 왼쪽 발목에 선명한 한글로 '태권도'를 적었다. 자신의 종목에 대한 애착을 표현한 것이다.

④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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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고. JTBC골프

반드시 기억해야할 일을 문신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여자 골퍼 리디아 고(19·뉴질랜드)의 오른 속목에는 로마자 'IV-XXVII-XIV'라는 암호가 있다.

아라비아 숫자로는 '4-27-14'인데 이는 그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회원이 된 후 처음으로 우승한 날인 2014년 4월 27일을 뜻한다. 리디아 고는 "첫 우승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문신을 새겼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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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키엘 라베치(왼쪽)와 디에고 마라도나. 왼쪽 빨간 원이 마라도나 얼굴. [셀러브리티 타투스 캡쳐]

자신의 우상을 그려넣는 선수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에세키엘 라베치(31·허베이)는 왼쪽 옆구리에 자국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56)의 얼굴을 새겼다. 마라도나의 오른 팔뚝에는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얼굴이 있다.

⑤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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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위)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중앙포토, [셀러브리티 타투스 캡쳐]

문신은 나눔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몸에 문신으로 가득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35·파리 생제르맹)는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들의 이름을 몸에 새겼다. 그는 “어딜 가나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르지만 세상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도 있다. 지금부터 나를 향한 응원을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리겠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레알 마드리드)의 몸에는 문신이 한 개도 없다. '문신을 한 뒤엔 1년 정도 헌혈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혈액원의 권고 때문이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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