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이 다는 아니네, 지지층 중독시킨 트럼프 4색 마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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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공화당 전국위원회(RNC)는 21일(현지시간) “경선에서 누가 승리하건 그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극적 발언 일부러 던져 ‘공짜 홍보’
선거자금, 루비오의 3분의 1만 써
셀카·포옹 않고 적당한 거리 두기
유권자에 “뭔가 좀 다른데” 느낌 줘
저학력·저소득층 백인들 지지 견고
공화당 전국위도 “경선 이기면 인정”

 지난 20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압승한 트럼프의 ‘대세론’을 ‘현실’로 인정한 것이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도 21일 “그동안 ‘트럼프가 고꾸라질 때 누가 대안으로 떠오를까’라 했지만 ‘만약 트럼프가 고꾸라진다면…’으로 표현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공화당은 트럼프가 1위를 차지할 경우를 대비한 ‘중재 전당대회’를 논의하기도 했다. 중재 전당대회는 당 지도부가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제도로 ‘자격 미달’인 후보를 퇴출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대세남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꼽는 매력 포인트(강점)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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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절묘한 순발력’. 특히 트럼프 주요 지지층인 저학력·저소득층 백인에겐 거의 중독과 같다.

 21일 오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트럼프 유세장 조명이 갑자기 꺼졌다. 시위자에 의한 것이었다. 10초가량 후 다시 조명이 들어오자 트럼프가 갑자기 주먹을 쥐며 격하게 외치기 시작했다. “불 꺼, 불 꺼, 불 꺼.” 유세장의 지지자들도 이를 따라 외쳤다.

 할 수 없이 행사장 조명 담당자가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트럼프는 다시 외쳤다. “조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난 오늘 이 행사장 대여료를 안 낼 것이다. 그럼 다음번에 더 좋은 조명을 쓸 수 있다. 협상이란 이렇게 하는 게다. 이게 바로 내가 대통령이 돼 다른 나라와 협상할 방식이다.” 무역적자·멕시코 등 이민자들로 인해 일자리 위협을 받는 노동자 계층의 폐부를 파고드는 순발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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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는 ‘돈을 안 쓰고 이기는 법’을 안다는 것.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1일 “트럼프는 선거자금의 룰을 다시 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연방선거위원회가 20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달까지 2400만 달러(약 300억원)을 썼다. 같은 당 경쟁자인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7600만 달러·약 937억원)의 3분의 1,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6000만 달러·약 740억원)의 절반도 안 된다.

TV광고에 ▶젭 부시가 8090만 달러(약 1000억원) ▶루비오가 5040만 달러(약 620억원)를 투입할 때 트럼프는 850만 달러(약 105억원)만 썼다.

대신 의도적으로 ‘자극적 발언’을 던지고 거기에 미디어가 달려들게 해 ‘공짜로’ 홍보를 했다. 돈 안 쓰고 짭짤하게 실리를 챙기는 새로운 선거방식을 개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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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는 ‘아우라 만들기’다. 유세가 끝나면 지지자들과 다정다감하게 셀카를 찍고 포옹도 하는 다른 후보와 달리 트럼프는 의도적으로 적당한 거리를 둔다.

악수와 사인에 응하기는 하지만 표정을 잘 풀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경호원들도 많이 배치한다. “공화당의 유약한 리더십에 불만을 갖고 있는 저소득 유권자들로 하여금 ‘트럼프는 뭔가 좀 다른데…’란 느낌을 느끼게 한다”(월스트리트저널)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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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빈 괄호’를 남겨두는 화법.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본인이 최종 해석을 하지 않고 청중과 지지자들이 ‘해석’을 하도록 만드는 설득력 있는 화술이 높은 지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8월 자신에게 공격적 질문을 한 폭스뉴스의 여성앵커 메긴 켈리를 두고 “그녀의 눈에선 피가 나왔다. 그녀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나왔다”고 말하며 생리로 민감해져 그런 것이란 뉘앙스를 지지자들에게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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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인은 “코를 뜻한 것”이라고 피해나갈 여지를 만들었다. 베일러대 마틴 메드허스트 교수는 “트럼프의 화술은 청중을 심리적으로 설득하면서 몰두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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