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김용석 비서관 "아내여 나의 슬픈 아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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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고생만 시킨 내가 당신 임종도 못했소."

지난 2일 갑작스레 부인 안순분(50)씨와 사별한 청와대 인사혁신 비서관 김용석(54)씨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탄식이다.

대학 출신 노동운동가로서 방직공장 노동자 출신의 부인을 만나 지난 20여년간 전셋방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아온 세월이 가슴에 맺힌다. 게다가 이날 오전 5시40분쯤 출근해 청와대 직원 전체회의에 참석하는 바람에 아내가 쓰러졌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명동 대학생 모임 사건으로 4년간 옥고를 치르고 인천의 한 공장에 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이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 5거리에 있는 공단서점을 드나들다 서점 관리인이던 安씨와 사귀게 됐다. 서점은 서울 방배동 방직공장의 노조 조합원들이 노조가 해체된 뒤에 주머니 돈을 모아 차린 것이다.

安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서점을 맡게 됐다. 두 사람의 결혼에는 장애가 없지 않았다.

安씨는 당시 수녀원에 들어가기 위해 서점을 관리할 후임자를 찾고 있던 때였다. 수녀가 될 사람에게 청혼을 하니 쉽게 동의할 리 없었다. 경찰관이던 金씨의 부친도 결혼에 반대하고 나섰다. 주위에서 설득하고 金씨가 강하게 추진해 화촉을 올릴 수 있었다.

그 이후는 생활고의 연속이었다. 부부는 80년대 후반부터 인천시 부평구 부평공원묘지 주변 연립주택을 2천5백만원에 빌려 어렵게 생활했다. 노동운동과 재야 활동으로 바쁜 남편 때문에 安씨가 사실상 힘들게 생계를 도맡아 꾸려왔다. 자연히 스스로의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남편에게도 자신의 병세를 제대로 말해주지 못했다. 속으로 병을 키우던 安씨는 지난 2일 오전 9시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세상을 떠났다.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인천 가천의대 중앙길병원 영안실의 부인 영정 앞에서 金씨는 "지난주 대전에서 회의가 있어 주말에 아내를 불러 함께 동학사를 둘러보고 유성온천에 다녀왔다"면서 "그게 아내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돼버렸다"며 가슴을 쳤다.

인천=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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