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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면 맞은 북핵 외교를 위한 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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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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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북한 핵실험 이후 달포가 지난 지금까지 각국의 대응은 국제사회의 의견을 모으기보다는 엇나가는 편이다.

 첫 스텝은 도발을 계기로 중·러와의 공조를 한 단계 높여 최대한 안보리 제재를 끌어내는 것이다. 미진한 부분은 일방 제재로 보완한 뒤 미래의 협상이 단순 6자 간 구도가 아닌 ‘5자 대 북한’의 구도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선 최근 현황을 복기해 보자.

 핵실험은 중국과 러시아도 분노케 했다. 두 나라가 지정학적 고려로부터 비확산 명분 쪽으로 움직이는 계기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미·중 간에 ‘네 탓’ 공방이 벌어져 공조의 모멘텀이 손상됐고, 일이 틀어졌다. 케리의 방중 협의는 책임론 공방에 묻혔다. 격앙된 중국은 안보리 결의안 협의를 설 후로 지연시켜 김을 빼려 했다.

 이후 북한의 로켓 발사는 상황을 한 번 더 뒤틀었다. 중국은 당황했다. 안보리 협의를 지연시키고 있는데, 로켓이 발사되면 지연술은 김을 빼기보다 욕을 자초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을 만류시키기 위해 급거 우다웨이를 보냈으나 북한은 로켓 발사를 공지해 버렸다.

 중국은 분노했다. 미국이 “로켓 발사는 중국의 뺨을 때린 것”이라고 밝히자 중국은 “북한이 누구 뺨을 때렸는지는 말한 측이 알 것”이라고 받았다. 아픈 데를 찔린 중국이 곤경을 덮기 위해 일단 반발한 것이다. 사실 그간 중국의 협조는 미진했으나 공조로 나오는 추세는 분명했다. 계속되는 ‘네 탓’ 공방이 이를 막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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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국면에서 각국의 일방적 조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드(THAAD) 협의 개시, 일본의 양자 제재 복원, 개성공단 중단, 미국의 북한 제재법안 통과 등이다. 일방적 조치가 안보리 협의에 시너지를 줄지는 불투명하다. 이제 중·러는 사드로 대미 공세를 하고 있다. 중·러가 자국 안보와 지정학적 이해에 집착해 둘만의 공조로 가려 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국내에서는 강력한 조치를 주문하는 담론들이 넘쳐 났다. 핵무장으로부터 필살 제재, 중·러의 행태에 대한 격한 대응에 이르기까지 실현이 어려운 주장들이 나와 합리적 대안 형성을 저해할 정도가 됐다.

 이제 북핵 외교가 새 국면에 들어섰으며 앞길에 요동이 많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로 냉정한 현실주의에 확고히 서야 한다. 정치권이나 여론의 격한 주문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의 외교안보 논의 과정은 특이하다. 정파와 이념에 경도되고 포퓰리즘과 감정에 좌우되는 일이 잦다. 더욱이 지금은 선거를 앞둔 때다. 현실주의의 요체는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고, 우리의 역량과 한계를 냉정히 알고 대처하는 것이다. 국제정치 현실은 엄혹하다. 우리가 전체 국면을 좌우할 것처럼 사고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우리가 이스라엘처럼 행보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독자적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남북이 분단되고 4강에 둘러싸인 채 북핵을 해결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동맹과 동반자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그래야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둘째, 솔직히 상황은 나빠졌으나 중·러를 공조로 유도하는 노력은 포기해선 안 된다. 우리에게 북핵은 사활적 이슈다. 하지만 주변국엔 국경안보, 대미 관계 등 여타 계산도 연루된 사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북한의 도발을 끈질기게 지적하면서 중·러를 국제 공조로 유도하는 것이다. 미·중 간의 네 탓 공방을 말리면서 중·러가 국제 제재에 힘을 합치도록 촉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세째로, 큰 맥락에서 강대국 간 관계를 잘 짚어야 한다. 북핵 공조에 영향을 줄 미·중 관계의 큰 틀은 지난 수년간 경화되었다. 케리의 방중도 캄보디아·라오스 방문에 이어진 것이지만 중국은 이 여정이 중국 견제를 위한 미·아세안 정상회의 준비 포석이라고 보고 있었다. 또 방중 직전 미 군함이 남중국해의 중국 관할 섬 인근을 항해한 일도 있었다. 케리 방중이 북핵 공조를 끌어내기 어려웠던 배경이다. 더욱이 방중 전 책임 공방까지 있었으니 더 말할 것이 없다. 미·러 관계도 우크라이나 사태 이래 경색 국면이다. 이제 사드가 쟁점으로 추가되었다. 이처럼 현실은 우리에게 강대국 관계의 큰 맥락 속에서 북핵 공조 여지를 찾는 창의력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강대국을 상대할 때는 주도면밀해야 한다.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하고 사전 대처를 잘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거친 행동에 대비해야 한다. 댄스 하는 줄 알고 얼싸안고 도는 동안 상대방은 유도를 한다며 우리에게 치명적 기술을 걸지도 모른다. 아울러 북핵 사태 앞에서 우리 사회가 단합하고 지구력을 보여야 그나마 강대국에 대처할 수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우리 외교는 험로에 섰다. 한국 외교가 리얼리즘과 사려 깊은 대응으로 이 길을 헤쳐 가기 바란다. 사회적 담론도 이 방향으로 전개돼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가 북한에 대량살상무기 개발 능력과 함께 우리의 국내 분열, 그리고 국제공조 균열이라는 일석삼조를 안겨줘선 안 된다.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