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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문제, 시장 실패 아닌 정부의 실패…멀리 보는 지도자 없는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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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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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뉴노멀(New Normal).’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지적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것도 틀린 말
30대 재벌, 30년 전과 비슷하고
중견기업 상향 이동도 거의 없어
GDP·수출이 국가목표인 시대 지나
청년 창업, 기업 혁신 중요한 시대

 글로벌 경제의 모든 나라가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고부채에 신음하고 있는데 정작 대처할 방향은 어떤 나라도 아직 확실하게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 초대 회장)는 “뉴노멀 시대는 글로벌 자본주의 경제의 시련기”라며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이나, 뉴노멀의 문제는 ‘시장 실패’가 아니라 ‘정부 실패’로부터 일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경제학회(회장 이지순)가 17∼18일 서울대 사회과학대에서 개최하는 ‘2016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우리의 뉴 노멀-그 본질과 처방’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한국경제학회는 18일 오후로 예정된 조 명예교수의 기조연설문을 학회 홈페이지에 미리 공개했다.

 조 명예교수는 멀리 보는 지도자의 부재가 뉴노멀 시대를 불렀다고 봤다. 그는 “정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지도자의 시계(視界)가 항상 눈앞의 득실만 보고 원시적(遠視的) 비전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치국(治國)의 원리’인 치도(治道)가 빈약했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치도의 모범사례로 꼽았다. “루스벨트는 국민, 특히 밑바닥의 서민을 사랑하는 높은 덕성을 기초로 빈부 격차를 줄여 분배의 균형을 잡았다. 국민의 가치관을 새롭게 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고, 용기와 신념으로 나라를 개조했다.”

 그는 한국경제에는 한국 특유의 뉴노멀이 있다고 했다. 한국의 뉴노멀로는 ▶경제의 성장 잠재력 추락 ▶정치 혼란 ▶사회의 갈등과 분열 ▶국민의 풍기(風紀) 퇴락을 거론했다. 이 같은 ‘국산 뉴노멀’을 극복하려면 정부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낙하산 인사부터 근절해야 한다는 비판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래로 3년 동안 사심 없이 청렴결백하게 국정에 전념해 왔다. 그것은 국민이 다 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비상시에는 청렴결백만으로는 부족하다. 박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언급한 대로 국가개조(nation rebuilding·나라 다시 만들기)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심기일전해 국민을 상대로 치도(治道)에 따른 ‘정치’를 해야 한다. 새로운 발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지지를 받자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신뢰를 얻자면 국민의 이해를 얻어야 한다.”

 뉴노멀을 넘어서려면 경제분야에선 젊은이들의 창업과 기업의 혁신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세간에는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말이 유행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고 했다. “우리는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매우 약하다. 한국의 30대 재벌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다름이 없고, 중견기업이 상향 이동한 것도 거의 없다. 한국은 다이내믹한 사회가 아닌 것이다.”

 특히 경제외적인 분야에 나라발전을 저해하는 장애요인이 매우 심각하다고 봤다. 그는 “한국의 정치·교육·사회·문화 등이 모두 기능장애(dysfunction)에 걸려 있다. 이것이 부메랑 효과로 경제 기반조차도 짓누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는 경제, 교육, 정치, 사회, 문화 등 국가 정책을 제쳐놓고, 국내총생산(GDP)과 수출의 증가를 나라의 최고목표로 삼아왔다. 국민도 그것을 기준으로 정부의 업적을 평가했다. 이런 반지성적이고 치도(治道)에 어긋나는 정책이 우리의 뉴노멀을 불러왔다. 이런 정책이 쌓이고 굳어져서 우리의 후진을 ‘인간절벽’ 위에 서게 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3포’ ‘5포’ ‘N포’에서 벗어나 연애, 결혼, 출산을 마음대로 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청춘을 포기하다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국민이 돈의 노예가 된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

 조 명예교수는 “앞으로 우리나라는 경제를 비롯하여 모든 국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람을 위주로 하여,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가진 정부가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정책을 운영하는 것, 이것이 고금동서(古今東西) 모든 나라의 성쇠(盛衰)의 관건”이라고 했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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