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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첨단소재·뉴 디자인 삼박자 … 시계, 예술로 승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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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제네바 고급시계박람회 가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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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는 주요 기능이 시계판 중간에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고유의 기술인 ‘미스테리’를 적용한 시계를 선보였다. 고급 기능을 적용해 시계의 본분에 충실하면서 그 어떤 기계적 요소도 눈에 보이지 않도록 숨겨 미(美) 적인 완성도까지 갖췄다. ‘아주레 펜던트 미스터리 투르 비옹 워치‘(사진 위)는 투르비옹이 다른 부속과 연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며, 25.93캐럿의 사파이어는 분리할 수 있다. ‘로통드 드 까르띠에 아스트로미스터리’(사진 왼쪽)는 시계 바늘이 무브먼트와 연결되는 부분을 보이지 않게 처리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냈다.

해마다 1월 중순이면 스위스 제네바는 시계의 도시로 변한다. 워낙에 고급 시계 부티크가 많은 도시지만,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가 열리는 일주일간은 그 성격이 더욱 도드라진다. SIHH는 까르띠에·피아제 같은 고급 시계 브랜드들이한해 판매할 신제품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자리다. 올해도 제네바 중심가 도로에는 시계 브랜드들이 내건 광고가 나부꼈고, 시내버스는 SIHH가 열리는 컨벤션센터 ‘팔렉스포’와 각 호텔을 잇는 셔틀 버스로 운행했다. 시계회사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고위 임원들, 각국에서 온 큰손 바이어 등 시계를 업(業)으로 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현장에 다녀왔다.

지난달 18일 스위스 제네바국제공항 근처 ‘팔렉스포’에서 SIHH가 개막했다. 까르띠에·피아제·바쉐론 콘스탄틴·예거 르쿨트르를 비롯한 고급 시계업체 24개가 전시 부스를 세웠다. SIHH는 시계 애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행사다. 새해 열리는 첫 전시회인데다, 최고 업체들이 몇 년간 갈고 닦은 첨단 기술력과 최신 디자인을 뽐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업체별 프레젠테이션룸에서는 쉴새없이 신제품 설명회가 열렸고 별실에서는 바이어들의 주문 상담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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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제 ‘라임라이트 갈라 밀라니즈’. 천 조직처럼 짠 느낌의 밀라니즈 메쉬 스트랩이 흐르는 듯한 곡선을 연출한다.

브랜드마다 개성은 제각각이지만 몇몇 줄기의 트렌드도 감지됐다. 올해 고급 시계 브랜드들은 여성을 위한 시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예술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로 창의적인 디자인도 등장했다. 첨단 기술 경쟁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시계 속이 훤히 보이는 스켈레톤 스타일과 블루 컬러의 인기는 지난해에 이어 계속됐다.

기계식 시계, 여성에게 손내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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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시계들이 한 해의 신제품을 선보이는 국제고급 시계박람회(SIHH). 올해는 1만2500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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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드뷔 ‘벨벳 컬렉션’의 ‘블로썸 벨벳’. 에나멜 플레이트를 정교한 상감세공기법으로 조각하고 보석을 세팅했다.

SIHH에서 공개된 고급 시계들은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십억원씩 하는 초고가 제품이다. 대부분은 태엽과 톱니바퀴, 스프링 같은 기계 장치를 통해서 움직이는 ‘기계식 무브먼트’를 사용한다. 기계식 시계는 동전만한 크기의 작은 무브먼트에 얹어진 수 백개의 부품이 질서있게 움직이며 각종 기능을 구현하는 매력 덕분에 오랜 기간 남자들의 ‘로망’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업체들이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피아제는 독특한 비대칭 모양의 둥근 케이스가 자연스럽게 시곗줄로 이어지는 ‘라임라이트 갈라 컬렉션’으로 호평받았다. 옐로·화이트 골드를 천 조직처럼 짠 느낌의 ‘밀라니즈 메쉬 스트랩’은 손목에 부드럽게 감기면서 흐르는듯한 곡선을 연출했다. 다이아몬드가 시계 케이스에만 세팅됐는데도 마치 시곗줄 전체에 박힌 것처럼 화려하게 빛났다.

예거 르쿨트르는 처음으로 여성 전용인 ‘리베르소 원’ 컬렉션을 선보였다. 1930년대에 나온, 폭이 좁고 긴 형태를 되살리면서 현대적인 트렌드를 반영해 젊은 여성들을 위한 디자인을 만들었다. 세계적인 슈즈 디자이너인 크리스찬 루부탱과 공동으로 디자인한 ‘아뜰리에 리베르소 바이 크리스찬 루부탱’도 내놓았다. 까르띠에는 가장 자리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우아한 타원형 시계 ‘입노즈 컬렉션’을 처음 공개했다.

로저 드뷔는 아예 올해를 ‘벨벳 디바의 해’로 선포했다. 신제품 10개 중 9개가 여성용이었다. 알바로 마지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영화제 시상식장의 화려한 무드를 부스로 옮겨왔다. 알렉산더 매퀸, 마틴 마르지엘라, 클로에 같은 명품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들이 로저 드뷔 시계를 차고 레드 카펫을 밟는 설정으로 꾸몄다.

2011년 탄생한 ‘벨벳 컬렉션’을 여성의 다섯 가지 면모를 담은 5개의 세부 라인으로 제안했다. 여성 컬렉션에 처음으로 컴플리케이션을 적용한 ‘벨벳 시크릿 하트’ 등이 눈길을 끌었다.

더 정교하게, 가볍게, 아름답게

가장 많은 110개의 신제품을 들고 온 까르띠에는 아스트로미스터리라는 신기술을 처음 선보였다. ‘로통드 드 까르띠에 아스트로미스터리’는 시계 바늘이 무브먼트와 연결되는 부분을 눈에 보이지 않게 처리해 투명한 본체 위에 가볍게 떠 있는 듯 보이는 디자인이다. 무브먼트 기술력과 디자인 미학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시계 바늘을 무브먼트에 직접 연결하는 게 아니라 가장 자리에 톱니 모양 금속이 부착된 두 장의 크리스탈 디스크에 고정한다. 한 장은 분(分)의 속도로, 다른 하나는 시(時)의 속도로 돌아가면서 바늘을 움직이는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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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쉐론 콘스탄틴 ‘오버시즈 III 컬렉션’의 ‘오버시즈 크로노그래프’

바쉐론 콘스탄틴은 ‘오버시즈 III’ 컬렉션 출시 20주년을 맞아 무브먼트와 디자인을 확 바꾼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다. 특히 ‘오버시즈 크로노그래프’는 개발에만 5년이 걸린 새로운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적용했는데 무브먼트 주위에 연철 소재 링을 둘러 시계를 자성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항자기성(anti-magnetic) 기능을 구현했다. 시계 뒷면에서 보이게 처리해 미적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특별한 도구나 기술 없이도 직접 시곗줄을 갈아끼울 수 있는 ‘이지 핏’ 시스템도 특허를 받고 처음 공개했다. 모델마다 메탈·가죽·고무 3가지 타입의 시곗줄을 제공해 3개의 시계를 가진 효과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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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보다 30% 얇아진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트리뷰트 자이로투르비옹’

예거 르쿨트르는 ‘리베르소’ 컬렉션 탄생 85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라인을 정비했다. 특히 ‘리베르소 트리뷰트 자이로투르비옹’이 눈길을 끌었다. 기존 모델보다 기능을 높이면서 폭과 두께를 30%씩 얇게 만든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다. 자이로투르비옹은 공기의 저항을 줄여 시계의 정밀성을 높여주는 혁신 기술이다.

랑에운트죄네는 세 가지 컴플리케이션에 다섯 가지 기능을 추가로 장착한 ‘데이토그래프 퍼페추얼 투르비옹’을 소개했다. 세 가지 컴플리케이션은 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옹, 크로노그래프를 말한다. 퍼페추얼 캘린더는 날짜뿐만 아니라 윤년을 자동으로 구별하는 기능이다. 투르비옹은 중력으로 인해 생기는 시간 오차를 보정하는 장치다. 이 회사 관계자는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을 지닌 시계를 개발할 때 가장 큰 도전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메커니즘이 서로 완벽하게 맞물리게 배열하고 기능적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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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버스와 협업해 항공기 신소재를 적용한 리차드 밀 ‘RM 52-02’

소재에 관한 혁신도 계속됐다. ‘리차드 밀’은 에어버스와 협업해 최첨단 항공 소재와 기술을 시계에 적용했다. 시계업계 최초로 비행기 터빈 날개에 쓰이는 신소재인 티타늄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시계 ‘RM 52-02’를 공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 소재는 티타늄보다도 약 15% 무게가 덜 나가고, 스트레스 내성이 뛰어나다”며 “용해점이 다른 두 금속을 섞는 작업인 만큼 무척 까다로운 공정을 거쳤다”고 소개했다. 비행기 창문을 닮은 시계 케이스도 재치를 더했다.

지난해 고무 베젤 위에 보석을 세팅하는 신기술을 보여준 로저 드뷔는 올해는 카본 소재 위에 보석을 세팅하는 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블랙 벨벳’은 카본 소재 베젤에 1캐럿 안팎의 파라이바 전기석 66개를 세팅했다. ‘엑스칼리버 오토매틱 스켈레톤’에도 카본 소재를 적용했다. 로저 드뷔 관계자는 “카본은 금보다 10배, 백금보다 2.5배 가볍기 때문에 착용감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예술작품을 품은 시계

몽블랑 ‘4810 컬렉션’의 ‘엑소 투르비옹 슬림 110주년 한정판’ 아시아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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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시계의 경쟁력은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에나멜 페인팅, 조각 같은 예술적 기법들을 활용해 장식과 기교가 많이 들어간 시계가 등장했다. 몽블랑은 창립 110주년을 맞아 ‘4810 컬렉션’의 세 가지 한정판 모델을 선보였다. ‘엑소 투르비옹 슬림 110주년 한정판‘은 각각 아시아·북미·유럽 대륙의 지도를 한 폭의 그림으로 다이얼에 담았다. 장인이 손으로 직접 페인팅하는데 꼬박 1주일이 걸리는 공정이다. 피아제는 시계에는 잘 쓰지 않는 공예 기법으로 장미를 그려넣은 ‘우드 마케트리 다이얼의 알티플라노’ 등 3개 모델을 선보였다.

제네바=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SIHH, 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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