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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대신 방검복, 소싸움판의 여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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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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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청도군 소싸움 경기장에 나란히 선 곽현순 조교사, 싸움소 주인 안귀분씨, 김지미 심판(왼쪽부터).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달 30일 경북 청도군 청도 소싸움 경기장. 모래가 깔린 원형 싸움장(760㎡)에서 체중 900㎏ 짜리 황소 두 마리가 마주섰다. 가쁜 숨을 쉬며 상대를 노려본다. 30㎝가 넘는 뿔로 곧 들이받을 기세다.

곽현순씨, 조교사 중 유일 여성
20년 경력 여성 조련사 안귀분씨
‘싸움소 대모’로 1000경기 치뤄
심판 김지미씨와 함께 여풍 주역

이들 사이에 검은색 방검복(관통상에 대비해 입는 안전조끼)을 입은 30대 여성이 서 있다. “가라고, 가라고”라고 소리치며 소들을 자극했다. 그러자 약속이나 한 듯 거칠게 맞붙기 시작했다.

이 여성은 곽현순(32) 조교사다. 청도 소싸움경기장의 조교사 22명 중 유일한 여성이다. 조교사는 소들을 자극해 싸움을 붙이는 일을 한다. 그는 2011년 경기장이 개장할 때부터 5년째 매주 두 차례씩 소싸움 장에 오르고 있다. 곽씨는 “소에 걷어차이면서 다리 신경이 손상돼 깁스를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곽씨 외에 ‘싸움소의 대모’로 불리는 안귀분(63)씨와 소싸움 심판 김지미(36)씨도 있다. 이들이 소싸움 판에 ‘여풍’을 일으키고 있다. 거친 소싸움 판에서 일하는 만큼 관람객들의 관심도 높다.

곽씨는 충청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28살 때 처음 조교사 일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소 500마리를 키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소싸움을 접했어요. 그게 인연이 돼 조교사 일을 하게 됐고 조교사인 남편까지 만나게 된 거죠.”

안씨는 ‘안창이 농장’을 운영하는 우주이자 싸움소 전문 여성 조련사다. 20년째 싸움소를 훈련시키고 있다. ‘창’자 돌림 싸움소 5마리를 키우는 그는 지금까지 10여 마리를 키워 1000여 번 경기에 내보냈다. 승률은 70%를 넘었다.

안씨에겐 특별한 훈련법이 있다. 우선 “어이구, 잘한다”라며 소들에게 용기를 준다. 그러곤 20㎏짜리 쇠 목걸이를 목에 건 뒤 뿔로 들이받는 훈련을 시킨다. 산행·타이어 끌기 등은 체력 강화 훈련이다.

안씨만 만들 수 있는 특별식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싸움소를 만드는 ‘비법 중 비법’은 자식처럼 돌보는 겁니다. 피를 흘리고 농장으로 돌아오면 약을 발라주고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면 소들도 이를 느낍니다. 그러면 다음번 싸움에도 용기있게 나서지요.”

이곳은 돈을 걸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소싸움장이다. 김지미(36)씨는 이곳에서 주목을 받는 판정 심판이다. 녹색 상의에 흰 장갑을 끼고 싸움장을 지키는 그 역시 12명의 판정 심판 중 ‘홍일점’이다. 소싸움장 개장 후 시험을 거쳐 심판 자격증을 땄다.

이들이 활약 중인 청도 소싸움은 지난달 9일 올해 시즌을 시작했다. 오는 12월까지 272마리의 싸움소들이 갑종(800㎏~무제한), 을종(700㎏~800㎏ 미만), 병종(600㎏~700㎏ 미만)으로 나뉘어 뿔로 상대를 들이받고 밀어붙이며 대결을 벌인다. 소가 뒷걸음치거나 엉덩이를 보이고 달아나면 지는 것이다.

관람객은 1경기당 100원에서 10만원까지 돈을 걸 수 있다. 지난해 외국인을 포함해 모두 64만2436명이 찾았다. 박문상(61) 청도공영사업공사 사장은 “VIP실을 만들고 최강자전 같은 이벤트로 많은 관람객이 소싸움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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