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이 세계 경제위기의 진앙이 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차이나랩 대표
박종근 기자 중앙일보 비주얼에디터
기사 이미지

정덕구 이사장은 “중국 공산당이 아직도 시장에 대한 장악력에 과잉 자신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며 중국의 현재 문제를 정치 체제와 시장 체제 사이의 부조화라 진단했다. [사진 박종근 기자]

[유상철의 직격 인터뷰] 중국 공산당이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새해부터 중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증시가 폭락하고 위안화 가치는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엔 25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경제 성장률이 7% 아래로 떨어졌다. 중국 통계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성장률은 이보다 훨씬 못할 것이란 분석이 있다.

중국이 세계 경제위기의 뇌관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중국에 우리 교역의 5분의 1을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 경제계 고위 인사들과 깊은 교류를 해온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5년 전 펴낸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중앙books)이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지금 한국을 보는 중국의 내심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중국은 기본적으로 세계 모든 나라가 동등하고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큰 나라는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작은 나라는 이에 순응해야 한다는 만방내조(萬邦來朝)의 DNA를 갖고 있다. 한국은 중국의 변방 국가이며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영원한 친구라곤 보지 않는다. 다만 한국이 갖고 있는 역량과 위치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있기 때문에 중국의 이익에 부합되는 범위 내에서 긴밀성을 유지할 뿐이다. 중국은 한국을 이성적으론 친구라 보지만 감성적으론 그저 타인이라 생각한다. 한국이 국가 역량을 계속 신장해 중국이 필요로 하는 나라로 남을 경우에만 중국은 우리의 친구로 남을 것이다. 결국 중국은 우리에게 제한적인 친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주 우리를 외면도 하고 자기 계산에 분주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를 너무 섭섭하게 생각할 필요 또한 없다.”

-새해 초 중국 증시가 폭락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선거권을 갖지 못한 중국 인민이 대신 주식을 던짐으로써 당국의 정책에 항의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국 증시는 왜 폭락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중국인의 투기 성향을 꼽을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노름을 좋아한다. 마작에서 주식으로 판을 옮겼다고나 할까. 또 주가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반영한다. 증시 폭락의 가장 큰 배경은 많은 투자가가 중국 경제의 장래를 불안하게 본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중국의 수출이 부진의 늪에 빠지며 성장률이 낮아졌다. 그 후유증이 증시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중국 당국의 오판이다. 자신이 주식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장악은커녕 시장에서 샅바를 놓쳐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중국 정치가 증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증시 호황을 정부에 대한 인민의 지지 표현으로 생각하다 보니 주가가 빠질 때마다 부양 정책을 써 왔다. 그 결과 너무 많은 사람이 주식 시장에 뛰어들어 묻지마 투자를 하면서 위험을 키워 왔다.”

-중국 경제를 불안하게 보는 시각이 많다.

“중국은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가 야구공같이 실밥으로 단순 봉합돼 있다. 공산당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한 몸같이 움직이며 높은 생산성을 보여 왔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시장화·개방화가 심화되면서 둘 사이의 실밥이 점점 터져 가는 모양새다. 공산당은 이를 계속 장악하기 위해 실밥을 강화하려 하지만 장성한 자식이 부모의 품을 떠나듯 시장은 공산당의 직접적인 통제 범위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중국이 목표로 하는 경제성장률 달성이 가능할까.

“특정 수준의 정치적 성장률을 고수하면 시장의 힘에 되치기당하며 불썽사나운 꼴을 당하기 십상이다. 중국 당국은 과도한 성장률 집착에서 벗어나 경우에 따라선 4~6%의 성장률도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중국 경제는 비관적인가.

“이는 중국 경제가 정체기에 접어든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정체기는 빠져나오기 어렵지만 일시적인 부진은 개혁을 통해 헤쳐 나올 수 있다. 현재로선 정체기에 든 것은 아닌 것 같다. 중국 경제에 다행스러운 건 엄청난 창업 열기로 스마트 카나 차세대 드론 등 새로운 산업 분야의 성장 동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 10년, 중국이 고통스러운 자기 정리 기간을 견뎌내면 중국 경제는 다시 추격의 시대로 리바운드할 것이다.”

-세계 경제위기가 전면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중국 경제가 뇌관(雷管)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나 브라질, 남아공, 터키 등의 신흥국 위기 또한 초(超) 저유가 추세가 지속되면서 장기화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총수요 부족이 세계 경제에 나비효과를 나타내며 확산 중에 있다. 중국 경제 자체가 위기 관리에 성공하더라도 저성장 추세는 당분간 멈추기 어렵기 때문에 세계 경제는 극심한 침체를 경험할 것이다.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위기의 진앙지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후진타오(胡錦濤)와 원자바오(溫家寶)가 호흡을 맞춘 지난 정권에선 중국 경제가 호황을 누렸다. 한데 현재 그보다 더 강력한 리더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체제가 들어선 뒤 중국 경제가 문제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언가.

“이는 후진타오-원자바오가 잘하고 시진핑-리커창이 못해서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문제는 오히려 후진타오 당시에 개혁을 심화하지 않고 재정을 과도하게 투입해 부실의 밑거름을 만든 데 있다.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 때 세계 각국이 돈을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섰는데 이를 제일 열심히 한 게 중국이었다. 무려 4조 위안을 풀지 않았나. 한데 이 돈이 농촌 주민의 가전제품 구입 시 보조금으로 쓰이거나 과거 퇴짜를 맞은 사업 등에 쓰였다. 특히 중화학 공업에 대한 과잉·중복 투자가 문제였다. 그 결과가 과잉 투자→공급 과잉→가격 폭락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때 노동의 한계생산성과 자본의 한계효율이 급속도로 낮아지며 잠재성장력이 약화됐는데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경기 순환 사이클상 안 좋을 때도 있는데 중국 당국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겨 보려 하다가 현재 힘에 부쳐 고통을 겪고 있다. 그 후유증 속에 시진핑 정부도 정치적·사회적 문제 등의 복합 요인으로 경제 내부관계의 혁신에 본격적으로 칼을 빼지 못하고 있다.”

-시진핑-리커창 체제가 직면한 난제는 무언가.

“세 가지다. 부동산 버블 잡기와 주식 시장의 거품 제거, 그리고 과잉 투자한 중화학 공업에 대한 구조조정이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그 가동률이 50%에도 못 미치는 중화학 분야의 조정이다. 쉽지 않다고 한다. 왜 그런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과잉·중복 투자된 분야를 정리하다 보면 실업자가 대량으로 생긴다.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중국 사회가 동요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중화학 공업 기지 대부분이 동북 3성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구조조정이 자칫 동북 지역 주민의 반감을 사 지역 문제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구조조정 초기 단계엔 성장률이 대폭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도 경제를 살리려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는 결국 중국의 체제 위험과 경제 위험 중 어느 것이 더 큰가를 따지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경제 위험을 해소하고자 한다면 시장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불필요한 인원은 해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이제까지 ‘경제 성장으로 인민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정권 정통성의 기반으로 삼아온 중국 공산당으로선 감내하기 쉽지 않다. 자칫 체제 자체의 안정성까지 건드려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체제 유지와 경제 구조조정의 우선 순위 선택에서 고민할 것이다. 내가 보기엔 중국 공산당이 어느 정도 자기를 희생하며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중국 공산당이 자기를 희생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중국 공산당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많은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공산당은 전지전능하지 않으며 국민을 고통 없이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400m 계주는 바통 터치에서 승부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지금이 바통 터치 시기다. 전환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역사에 현군(賢君)으로 기록될지 아닐지는 앞으로 10년의 세월에서 결판이 날 가능성이 크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장정과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이란 두 번째 대장정에 이어 시진핑은 구조조정이란 세 번째 대장정에 나서고 있다. 시진핑은 현재 마(魔)의 계곡을 지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우리 수출의 4분의 1이 중국으로 가는 등 전체 교역의 20%가 중국을 상대로 한 것이다. 이는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그렇게 높다고 말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다. 물론 달걀을 한 바구니 안에만 담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위험 회피 차원에서 다변화 전략을 준비하는 건 좋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붕괴될 것 같으니까 중국 의존도를 의도적으로 줄이자는 것은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우리는 중국의 구조조정 과정을 돕고, 새로운 관계 심화를 모색해야 한다.”

-우리 기업과 중국 기업의 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의 수교 이후 20여 년간 중국의 방대한 설비 투자와 공업화 과정에서 중간재인 부품소재, 그리고 자본재를 공급하는 기지 역할을 하면서 중국 특수를 누렸다. 그러나 중국의 부품산업도 비약적으로 발전해 이젠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론 안 된다. 앞으론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서 산업별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조선업을 예로 보자. 맨 아래 단계에 용접 등 단순 노동이 있다면 꼭대기 단계엔 선박 디자인 등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가 있다. 현재 우리와 중국은 조선업의 중간 부분에서 부닥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위쪽 분야로 치고 올라가야 한다. 이게 우리의 살길이다. 결국 우리 스스로가 꾸준히 자기 정리를 하고 혁신 역량을 길러야 한다.”

-중국 내수 시장의 어디를 공략해야 하나.

“중국의 향후 최대 산업은 미래에 대한 안심 설계 분야가 될 것이다. 급속하게 노령화가 진행되는 중국 사회에서 현재 노후 설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관련해 보험과 연금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 분야에서 중국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고 본다. 또 중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오염 문제, 짝퉁 문제, 불량식품 등이 바로 아킬레스건이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공기청정기를 만들든지 아니면 중국인들이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를 공급하든지 하면 이에 대한 중국의 수요는 활짝 열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중국의 중산층·고소득층 벨트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소득 탄력적인 고급 소비재, 명품, 레저, 스포츠 등 고급 소비 증가에 초점을 맞춰 적극 공략해야 한다.”

글=유상철 논설위원
사진=박종근 기자

정덕구는…
1948년생. 고려대를 졸업하고 재정경제부 차관과 산업자원부 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뉴욕 외채 협상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었다. 2007년 니어(NEAR)재단을 설립해 동북아의 무역자유화와 집단안보체제 구축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서울대와 중국 베이징대 등 한·중을 오가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