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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옷차림만 튀는 줄 알았니?…‘오렌지족 골퍼’ 파울러의 역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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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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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스

24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골프장에서 끝난 유러피언투어 아부다비 HSBC골프 챔피언십. 합계 16언더파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리키 파울러(28·미국)의 모자에선 ‘King(왕)’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스피스·매킬로이와 맞대결 승리
HSBC 챔피언십 우승컵 들어
9개월간 미국·유럽 투어서 4승
‘과대평가’ 조롱 뒤집고 빅3 위협

파울러는 이번 대회에서 내로라하는 골프 강자들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23·미국), 전 세계 1위 로리 매킬로이(27·북아일랜드)와 1, 2라운드에서 맞대결을 펼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 대회 전까지 세계 6위였던 파울러는 이번 우승으로 랭킹 4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세계 남자 골프계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1·미국)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빅3’가 자리잡았다. 1위 스피스, 2위 제이슨 데이(29·호주), 3위 로리 매킬로이 등의 빅3가 호각지세를 이뤘다.

빅3를 위협할 선수로는 장타자 버바 왓슨(38)과 더스틴 존슨(32·이상 미국) 등이 거론됐다.

파울러는 지난해 초까지 이 축에도 끼지 못했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에선 ‘파울러야말로 가장 과대평가 받는 선수’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2014년 열린 4개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5위 내에 들고도 우승은 하지 못해 ‘큰 대회에 약한 선수’라는 평가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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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왕)’이란 글자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퍼트를 하고 있는 파울러. 파격을 즐기는 그는 HSBC챔피언십에서도 오렌지색 상의를 입고 나와 세계 1위 스피스와 3위 매킬로이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사진 골프파일]

그러나 지난해 5월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그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7월 에버딘에셋 매니지먼트 스코티시오픈에서 유러피언투어 첫 우승을 거뒀고, 9월 PGA투어 도이체방크 챔피언십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최근 9개월간 전 세계에서 4승을 기록했다.

파울러의 경쟁력은 ‘파격’이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외할머니는 아메리칸 인디언 출신이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어머니는 백인 아버지와 결혼해 파울러를 낳았다. 그래서 파울러에겐 동·서양의 분위기가 묘하게 섞여 있다.

7세 때 골프를 배운 그는 독학으로 골프를 접하며 잡초처럼 성장했다. 그러다 지난 2014년 세계적인 코치인 부치 하먼(73·미국)의 지도를 받으면서 골프에 눈을 떴다.

최근 승부처 때마다 그의 집중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파울러는 지난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마지막 6개 홀에서 버디 4개와 이글 1개를 잡았고, 연장전 4개 홀에서 버디 2개를 잡아내며 우승했다. 스코티시오픈 우승 때도 마지막 4개 홀에서 3언더파를 쳤다.

HSBC 챔피언십 최종일에는 7번 홀(파3)에서 더블보기를 한 뒤 바로 다음 홀인 8번 홀(파5)에서 벙커 샷으로 이글을 잡아냈다. 파울러는 “지난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이후 ‘나를 믿으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골프계에서 그의 패션은 파격을 넘어서 충격적이다. 챙이 넓은 플랫빌 모자를 쓰고 나오는가 하면 형광빛 오렌지색 상의를 입고 나와 눈길을 끈다.

올해는 농구화 스타일의 하이탑 골프화와 밑단이 좁은 조거 팬츠를 입고 나왔다. 하이탑 골프화는 키건 브래들리(30), 미셸 위(27·이상 미국) 등이 이미 시도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아이템이었다.

파울러의 스타일은 그의 상승세와 더불어 점점 더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HSBC 챔피언십에서 보여준 그의 쇼트게임은 빅3에 대적할 만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파울러는 “아직 빅3와 비교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다면 더욱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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