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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611> 깃발로 보는 이슬람 무장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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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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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기자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온 국내 체류자 A씨가 북한산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의 깃발을 들고 찍은 사진이 공개됐을 때 일부 언론이 ‘IS(이슬람국가)‘ 추종자라고 보도했다가 ‘알누스라(Al-Nusra)’ 라고 바로잡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진만 보고 이를 맞췄다고 합니다. 이슬람 단체들이 각기 다른 깃발을 쓰기 때문입니다. 그 깃발들은 어떤 특징과 차이점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모든 깃발엔 “알라는 유일신” … IS만 딱딱한 고서체로 새겨

2014년 12월 호주 시드니의 금융중심가 마틴 플레이스의 한 카페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괴한들이 인질극을 벌였다. 당시 괴한들은 인질을 시켜 카페 유리창에 검은 깃발을 들어 보이게 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당초 언론들은 이들의 정체를 IS 대원이나 추종세력으로 보도했다. 호주에서 IS 가담자들이 발견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깃발을 내건 순간 언론의 분석은 달라졌다. 유리창에 걸린 깃발은 ‘블랙 스탠다드(Black standard)’ 또는 ‘샤하다 기(Shahada flag)’라고 불리며, 주로 알카에다(Al-Quaeda) 계열 단체에서 사용하는 깃발이었기 때문이다. IS가 사용하는 깃발과는 달랐다.

 이슬람 무장단체 깃발에는 공통분모가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앙에 자리잡은 아랍어 문구다. ‘샤하다’라고 불리는 이 문구는 ‘알라는 유일신이다. 무함마드는 신의 사도이다’라는 신앙고백의 의미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첫 장에 적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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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샤하다’는 이슬람에 입교자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문장이고, 무슬림에게는 언제나 입에 달고 사는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며 “이슬람교에서는 누구든 마지막 순간에 샤하다를 말하고 사망하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적은 복잡한 기호처럼 보이는 독특한 아랍어 서체는 ‘술루스체’다. 세로획이 가로획보다 3배 가량 긴 것이 특징인 술루스체는 아랍적 예술성을 인정받아 이슬람 예배장인 모스크를 장식하거나 서적의 표지 등에 많이 사용된다.

 또 하나의 공통분모는 색깔이다. 대부분의 이슬람 무장단체의 깃발은 검은색을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초기 이슬람 시대인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풍습이라고 한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과거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정복전쟁에서 검은 배경에 흰 글씨가 새겨진 사각 깃발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이슬람권에서 검은색은 순종과 복종 및 과거 칼리파 시대의 영광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수 백여 개로 난립한 이슬람 무장 단체들의 깃발들은 이를 조금씩 변형하면서 자신들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 검은 바탕에 샤하다를 써넣고 아랫 부분에 조직명을 적거나 칼, 초승달 등 각종 문양을 넣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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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불법 체류 중이던 인도네시아인 A씨가 2015년 4월 북한산에서 들고 있던 ‘알누스라’(Al-Nusra)의 깃발도 블랙 스탠다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아래에 아랍어로 ‘자브하트 알누스라’라고 적혀있다. 아랍어로 ‘자브하트’는 전선(戰線), ‘누스라’는 승리를 의미한다.

러시아에서 체첸 지역의 분리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카프카스 에미레이트 조직의 깃발은 샤하다 아래 긴 칼을 그려넣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탈레반은 반대로 흰 바탕에 검은 글씨가 있는 깃발을 쓴다. 기존 이슬람 세력과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1997~2001년까지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기간 동안 이 깃발을 국기로 사용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활동하는 무장단체 하마스의 깃발은 녹색 바탕에 샤하다를 넣었다. 녹색은 이슬람교에서 천국을 의미한다.

 서 교수는 “이런 깃발들은 이슬람 신앙에 대한 고백이기 때문에 딱히 무장단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등이 이를 사용하면서 무장단체를 의미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 예 중 하나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다. 녹색 바탕에 샤하다를 넣고, 아랫부분에는 긴 칼을 그려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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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센터장은 “사우디아라비아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태어나 이슬람교를 창시한 곳이다. 이곳은 이슬람교의 종주국으로 자부하기 때문에 국기에 ‘샤하다’를 넣었다. 긴 칼은 사우디 왕가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한편 테러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IS가 사용하는 깃발은 다른 단체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동영상 등으로 널리 알려진 IS의 깃발은 샤하다가 적혀진 방식과 형태가 다르다.

서체도 술루스체가 아니라 딱딱하고 각진 형태의 ‘쿠파체’다. 초기 이슬람 시대 문서에 주로 사용된 것이다. 무엇보다 깃발 하단에 예언자 무함마드의 인장이 박힌 점이 특징이다.

 샤하다 구절의 첫 문장인 ‘알라는 유일신이다’가 상단에 있고, 무함마드의 인장을 의미하는 하단의 둥근 원 안에는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라는 글이 적혀 있다.

서 교수는 “무함마드 실(Seal)이라고 불리는 둥근 원은 1400년 전 무함마드가 코란을 계시 받던 당시의 역사적 고증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아랍 각 지역의 통치자들에게 공개 서한을 전달해 이슬람으로 귀의할 것을 권고했는데, 자신이 보낸 서명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함마드’와 ‘알라’가 새겨진 인장 반지를 만들었다. IS 깃발의 둥근 원은 바로 무함마드가 편지에 찍었던 반지 인장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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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인장 반지는 무함마드 사후에 칼리파들이 상속받아 사용했으나 3대 칼리프가 살해되면서 우물에 버려졌다. 이후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서 교수는 “IS가 이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들의 종교적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초기 칼리프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IS와 동일한 깃발을 사용하는 이슬람 무장 단체들은 전 세계적으로 10여 개에 달한다. 나이지리아에서 각종 잔혹한 범죄로 알려진 ‘보코하람’을 비롯해 예멘의 ‘알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 리비아의 ‘안사르 알샤리아’, 소말리아의 ‘알샤밥’, 아프리카 북서부에서 활동하는 ‘알카에다 마그레브’ 등이다.

장 센터장은 “최근 몇 년간 IS에 충성을 맹세하는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늘어나면서 IS와 동일한 깃발을 사용하는 단체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슬람 무장단체 간에도 갈등이나 충돌을 빚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알누스라와 IS다.

유충호 경찰청 외사정보과장은 “알누스라와 IS는 모두 알카에다의 분파 조직이다. 하지만 알카에다가 지나친 잔혹성 등을 이유로 IS를 퇴출시킨 후 알누스라는 IS와 시리아 등지에서 주도권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시리아 곳곳에서 교전을 벌이며 극단적인 충돌을 빚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 과장은 “당초 인도네시아인 A씨는 IS를 지지한다고 보도됐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하마스는 알카에다와 IS 모두와 사이가 나쁘다고 한다. 2009년 8월 하마스의 활동 지역인 가자 지구에서 알카에다의 분파 조직인 준드 안사르 알라가 ‘가자지구 이슬람 수장국’을 선포하자 하마스는 이들을 즉시 공격해 붕괴시켰다. 준드 안사르 알라의 리더도 이 전투에서 사망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와 범죄로 골치를 앓는 유럽은 ‘블랙 스탠다드’에 대한 제재에 나서고 있다.

영국은 2014년 8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블랙 스탠다드’ 깃발을 내걸지 못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비슷한 때에 네덜란드에서는 공공 행사에서 이를 내거는 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됐다. 독일도 2014년 9월부터 교육 목적 외 IS의 깃발을 사용하는 것이 전면 금지됐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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