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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따라 ‘롤러코스트’ … 실물경제와 따로 놀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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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7 면

AP=뉴시스

6개월 전만 해도 중국에선 주식 한 주도 없는 이를 팔불출이라고 불렀다. 상하이에 일하러 온 농민공이 주식 투자로 아파트도 사고 백만장자가 됐다는 전설이 둥둥 떠 다녔다. 수년간 2000선 언저리에 맴돌던 상하이 종합지수가 7개월간의 무한질주로 5000 고지를 넘어설 때의 일이다. 상하이 지수는 2015년 6월 12일 5166으로 고점을 찍었다. 일부 소형주(스몰캡)는 10배 넘게 뛴 종목도 허다했고 누군가 “주가수익비율(PER) 100은 버블 아니냐”고 하면 바보 소리 듣기 일쑤였다.


조지 소로스가 말한 “정부 주도의 유동성 조작은 ‘달고나 크림빵(Hostess Twinkie)’처럼 입엔 달지만 재앙을 저축하는 것일 뿐”이라는 경고는 악담으로 치부됐다. 부러우니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냐는 대들 듯한 답변이 날아 들었다. 그로부터 반년 만에 세계 금융시장은 중국과 아랍이 촉발한 대혼란을 목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 미국 금리 인상이 계기가 됐다 해도 겨우 보름 남짓 만에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1월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과연 중국 증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고성장기에 주가 1000선 무너지기도중국 실물경제의 최대 급소는 유동성이다. 중국이 경제 규모에서 주요 2개국(G2)이라고 하나 역내 유동성 배분은 전 세계 여느 후진국에 못지않게 불투명한 데다 만성적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제도권 유동성의 90%를 은행을 통해 통제하고 있다. 그 주된 수혜자인 지방정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자, 정부 투자기관들이 독과점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9%를 넘나들었던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상하이 종합지수가 2000선을 중심으로 극히 낮은 변동성을 보였다는 것을 보면 증시로 돈이 거의 흘러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자본시장을 설계할 당시 잉여 유동성이 아니라면 도박판인 증권 시장으로 돈이 몰리지 못하도록 의도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중국 민간 경제는 만성 유동성 부족에 30년째 갇혀 있다. 대도시 뒷골목 벽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10-5’라는 쪽지 광고는 ‘10일에 5% 선이자(연 이율 180%)’라는 급전 조건을 말한다. 이를 피한다고 해도 월 5부(연 60%)가 개인 간의 통상 이자율이고, 월 2~3%로 낮춰 돈을 빌려 준다고 하면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문 밖에까지 나와 머리를 땅에 조아린다.


이렇게 돈을 굴리는 사람들에게 증시에서 15~20% 하락은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니다. 연말연시에 급전을 ‘10일간 5% 선이자 조건’으로 두세 차례 돌려 막기라도 했다면 실물경제의 호악을 불문하고 우량주라도 더 손해를 보기 전에 내던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선택이다. 대주주의 매도금지(Lock-up) 해제일로 예정됐던 이달 8일을 전후해 수많은 5% 이상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앞다퉈 주식을 팔아 치운 집단 패닉 현상은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빠르다. 6개월 넘게 재산권 행사가 금지됐던 이들은 1분 1초라도 빨리 주식을 현금화해 다른 곳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장기 이력을 살펴봐도 중국 증시가 실물경제와 유리된 패턴임은 명확하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의 실물경제가 15% 전후의 초고속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상하이 종합지수는 2000선은 고사하고 1000선이 무너질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추측건대 당시 중국 정부는 고성장기에 한국이나 일본의 제조업을 따라잡고자 모든 유동성을 실물로 강제 유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반면 지난해 성장률 8%, 7%가 연달아 깨지는 악재에서도 단기 유동성 과잉에 상하이 지수는 5000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실물과 증시가 ‘너 따로, 나 따로’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다. 이처럼 유동성이 지배하는 중국 증시는 실물경제와 크게 유리돼 따로 춤을 추는 허물지표(虛物指標)에 불과하다.


지난해 급등은 단기 유동성 과잉 때문지난주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지수(H 지수)와 국제 유가 가격이 과도하게 출렁인 것은 이 같은 유동성 장세가 파생상품으로 증폭된 결과로 해석된다. 유사 파생상품인 ‘낙인옵션(Knock In Option)’이 공통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유가는 배럴당 30달러·27달러·25달러·20달러가 중요 ‘낙인 포인트(K/I Barrier)’가 되고 H 지수의 경우 8000선을 중심으로 매 150포인트마다 그와 같은 포인트가 걸려 있다고 한다. 원유 가격 추이를 보면 주중 30달러가 깨진 뒤 순식간에 장중 27달러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반대로 21일과 22일 이틀간에는 무려 13% 넘는 전례 없는 단기 폭등을 기록하며 배럴당 32달러 윗단에 안착했다. 홍콩 H 지수도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주중 하루 7% 넘는 급락을 보이며 장중 8000선 및 7850선이 차례로 무너진 후 22일 3.44% 급반등해 8104로 마감됐다.


이처럼 흔치 않은 단기 변동성은 실수급 이외의 숨은 원인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주가 또는 유가 연동 상품이 지난주의 시장 변동성을 증폭시킨 원인으로 추론할 수 있다. 특히 지난주의 폭등락 시간차 공격은 헤지상품 취급 업체들이 특정 목표점을 향해 암묵적으로 동시 매매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홍콩 증시의 경우 수일간 거래량이 적은 점심시간 직전과 직후에 기관들의 매매가 몰린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뒷맛이 쓰다. ‘악마의 카르텔’이 작동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주가가 낙인 포인트에 근접하게 되면 금융업체는 매일매일 막대한 헤지비용이 든다. 그런데 지수가 낙인 포인트 아래로 하락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손실은 모두 투자자들에게 전가되고 오히려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유혹으로 금융업체들은 ‘암묵의 공동행위(Acting-In-Concert)’에 ‘우연히’ 합류하게 된다. 기초자산의 건강성과는 무관하게 거래가 이뤄지고 시장은 이에 따라 공포와 환호로 출렁인다.


G2 위상에 못 미치는 후진 시장연초부터 중국 증시는 세계 증권시장 혼란의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지만 중국 증시의 낙폭을 경기 침체의 선행지표로 해석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중국 증시가 실물경제와 상당히 유리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기치 않았던 파생상품의 여파로 지수 등락폭이 증폭된 것까지 용납해줄 이유는 전혀 없다. 중국 증시가 실물 문제건 파생상품의 덫에 걸렸건 지금의 위험지대에까지 밀려 내려온 것은 중국 스스로의 책임이다.


중국 증시는 G2 국가의 위상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 취약한 채권시장을 비롯해 불투명한 기업공개(IPO) 요건과 절차, 증시 퇴출시스템의 부재, 미미한 기관투자가 비율 등 증권시장 선진화를 위해 가야 할 길이 멀고도 멀다. 역으로 말하면 증시 선진화 없이 중국의 진정한 G2는 불가능하다. 다만 이 시기의 투자자는 중국 증시가 어느 후진국 증시에 못지않게 변동성이 큰 시장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핸디캡이 있는 시장이고 아직은 멀리건을 몇 번은 누릴 자격이 있는 성장국가지만 어쨌든 자신이 올라탄 것이 야생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한다.


김문수 액티스캐피털 아시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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