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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랄라 피격한 테러 단체, 대학 난입해 30여명 숨져

중앙일보

입력

극단주의 무장단체 파키스탄탈레반(TTP)이 20일 파키스탄 북서부 카이베르파크툰크와(KP)주의 대학에 난입해 폭탄을 터뜨리고 총기를 난사해 학생·교수 등 30여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고 파키스탄 정부 관리가 밝혔다. 그러나 한 목격자는 “앰뷸런스로 인근 병원에 실려간 사체가 100구를 넘는다"고 증언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현지시간) KP의 주도 페샤와르에서 50㎞ 정도 떨어진 차르사다에 있는 바차칸 대학에 자살 폭탄 조끼를 입은 4명의 무장괴한들이 침투해 경비원 등에 총을 쏘기 시작했다. 짙은 안개에 싸여 있던 현장에서는 폭발음이 10여 차례 이어졌다.

무장 괴한들은 교수·학생·경비원 등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다. 공격이 시작될 당시 교내에는 3000여명의 학생과 600여명의 교수·경비원·직원이 있었다. 생존 학생인 나세르(23)는 “괴한들은 남학생과 여학생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총을 쐈다”며 "내가 직접 헤아려본 사체만 56구였다"고 말했다. 숨진 희생자의 상당수는 여학생이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파키스탄 치안 당국은 오전 11시 45분쯤 대부분의 학생을 대피시켰으며 교내 2개 지역을 봉쇄하고 괴한들과 교전했다고 밝혔다. 괴한 중 두 명은 저격수의 총에 맞아 숨졌다. 군과 경찰이 투입돼 사람들을 대피시켰지만 짙은 안개 탓에 대피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학교 학생인 카시브 잰은 현지 언론에 "검은 터번을 한 무장괴한 여러 명이 교실로 들어와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치면서 총을 사방으로 난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자 뒤에 숨어있다가 도망쳤다"며 "시험도 있고 행사도 열리는 날이어서 교내에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날은 교내 행사로 파키스탄 북서부에 기반을 둔 파슈툰족 문화제와 함께 시 낭송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테러가 발생한 바차칸 대학은 파키스탄의 독립운동과 비폭력운동을 지도한 정치가 압둘 가파르 칸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그의 이름을 딴 바차칸 국제공항과 의과대학도 있다. 이 학교가 TTP의 공격을 받은 이유는 반(反)탈레반 진보주의자가 창설한 대학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종전에도 이 학교는 TTP의 공격 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

테러 직후 TTP는 페샤와르에 있는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4명의 전사가 이번 공격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나와즈 샤리프 총리와 맘눈 후세인 대통령은 "무고한 학생들과 시민들을 죽인 테러리스트들의 행위를 강력 비난한다"는 공동 성명을 냈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활동하는 TTP는 최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샤리아)의 시행을 주장하는 TTP는 2014년 12월 페샤와르의 군사학교에 난입해 150명 이상의 학생과 교직원의 목숨을 앗아갔다. 또 2012년에는 여성 교육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당시 15세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공격해 머리와 목에 총을 쏴 치명상을 입혔다. 말랄라는 영국에서 재활 치료 끝에 살아나 여성 교육과 인권 운동에 헌신해 2014년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테러 공격이 발생하는 나라다. 미국 메릴랜드대 글로벌테러리즘데이터베이스(GTD)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파키스탄에서는 850건의 테러 공격이 발생했다. GTD에 따르면 2014년 발생한 테러 행위의 78%가 파키스탄을 비롯한 아프가니스탄·이라크·나이지리아·시리아 등에 집중됐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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