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그림] 線과 색채의 화려한 이중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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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꽃봉오리와 줄기가 일그러진 격자 무늬의 그물망이 물방울처럼 달려 있다. 사각형과 삼각형이 한데 모여 몇 개의 성당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장미를 추상.단순화시킨 나선형의 원은 마치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생동감있는 리듬으로 퍼져 나간다. 여기서 좌우로 흐르는 평행선은 오선보, 수직선은 세로줄, 원형 장미와 줄기는 음표를 연상케 한다.

'장미 정원'은 스위스의 화가 파울 클레(1879~1940)가 1920년대 바우하우스 시절에 천착했던 격자형 평면 분할 작업의 서주와도 같은 작품이다. 음악과 자연은 클레에게 창조적 자양분을 제공해준 평생의 스승이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클레는 20대 중반 베른시립교향악단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으며 그의 아내도 피아니스트였다. 4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미술과 음악 사이에서 오랜 고심 끝에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모차르트 시대에서 음악의 황금기는 이미 정점에 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고통스런 피아니스트'등 그의 초기 작품에서 음악에 대한 풍자를 엿볼 수 있다.

음악은 바그너.말러.슈트라우스 등 후기 낭만주의에 이미 예술적 창조성의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모차르트는 그에게 유머 감각을 제공해 주었고 문학적.묘사적인 것과 정신적.영적.추상적인 것의 결합 방식을 깨닫게 했다. 이같은 영향은 클레의 작품에서 선 드로잉와 색채 폴리포니(다성음악)의 결합으로 나타난다. 여러 개의 독립된 선율과 주제가 동시에 흘러가면서도 수직적으로는 완벽한 화음을 연출해내는 모차르트의 '돈조반니'중 5중창 같은 경지다. 클레는 이렇게 말했다. "18세기말 음악이 성취한 폴리포니가 미술에서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파울 클레의 그림도 피터 맥스웰 데이비스, 에디슨 데니소프, 피에르 불레즈, 탄둔, 산도르 베레스 등 많은 작곡가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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