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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진박 카지만 필요한 건 대구 상권 키아줄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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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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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을 앞두고 대구에서 벌어지는 새누리당의 ‘친박’ ‘진박’ 마케팅에 대한 시민들의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19일 영하 추위 속 한 시민이 범어동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을 지나고 있다. 총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당사엔 아직 선거 관련 현수막이 걸리지 않았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영하 8도까지 내려간 19일 대구시 대신동 서문시장. 상인들이 저마다 두꺼운 외투 속에 턱을 파묻고 뜸해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총선 권역별 중간 점검 ① ‘두 마음’ 대구
‘진박 마케팅’ 피로감 확산에도
‘진실한 사람’ 위력 부인 못해
예비후보 39명 중 19명이 “친박”
유승민 밀어주자, 지역 여론 속
“대통령 맞선 건 부적절”의견도

선거철마다 대구 지역 유세가 시작되면 여야 없이 먼저 찾을 정도로 사람이 몰리는 곳이지만 이날 상인들은 손님 대신 전기난로 앞에 손을 내밀고 있었다.

“대구가 선거로 열기가 뜨거울 끼라 카는데 사람이 안 비입니더(보입니다). 앉아서 장사 걱정만 하는 기라.”

김영오 서문시장 상가연합회장은 책상에 놓인 지역 언론 매일신문 1면을 가리키며 “아이고”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 신문의 톱기사는 ‘이종진 불출마…민심 읽었나? 박심(朴心) 읽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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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진(대구 달성)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8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을 지지한 것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인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기사다.

이날 대구에선 류성걸(동갑)·권은희(북갑) 의원도 곧 불출마를 선언해 다른 ‘친박’ 인사에게 공천을 양보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주변에는 ‘우리를 무시하나’ 카는 분들이 많지예. 다들 친박 진박(眞朴) 카지만 정작 우리한테 필요한 정치인은 대구 상권 키아줄(키워줄) 사람인 기라.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은 상인들 잘 묵고 잘살게 하는 것보다 대통령 심기를 먼저 생각한다는 기 불만인 거죠.”

이른바 ‘진박 마케팅’이 펼쳐지고 있는 대구에서 정작 시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날까지 12개 선거구에 등록한 39명의 새누리당 예비후보 중 19명이 현 정부에서 일했거나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우고 있다.

김문수-김부겸(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경합하는 수성갑 지역에 사는 자영업자 박준범(50)씨는 “묵고사는 기 날로 힘들어지는데 진박, 친박에 관심이나 있겠능교”라며 “그런 꼴 비기(보기) 싫어서 투표를 외면하는 사람도 많이 생길 낍니더”라고 비판했다.

김문수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열세를 보이자 새누리당 내에선 교체설이 불거졌고 이를 들은 김 후보가 당 지도부에 항의 전화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말한 ‘진실한 사람’의 위력을 부인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대통령 지지도 조사에서 대구·경북(TK) 지역의 경우 ‘잘한다’고 답한 비율이 63.9%(16일 리얼미터)일 만큼 박 대통령의 인기가 높다. 전국 평균은 44.1%다.

상가연합회 김 회장은 “그래도 ‘대통령 사람한테 그카믄 되나’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친박 찍는 기 대구 사람 마음”이라고 했다.

새누리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 이런 상황을 계속 즐길 수는 없을 것”이라며 “결국 박 대통령이 없어도 대구를 끌어갈 수 있는 스타 정치인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대구에서 진박 마케팅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비박계인 유승민(동을) 의원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초선 의원이 4년간 지역 관리를 못해 물갈이되는 징크스가 있는 곳이 대구”라며 “그럼에도 3선을 해낸 유 의원의 기량을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 의원이 지난해 6월 국회법과 관련해 박 대통령과 마찰을 일으킨 데 대한 반감이 만만찮다는 의견도 있다.

유 의원 선거구에 거주하는 택시기사 최한용(69)씨는 “유 의원이 똑똑하긴 한데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에게 원내대표가 그런 행동을 하믄 안 되는 거 아입니까. 이번 선거에서 타격이 클 낍니더”라고 말했다.

현재 권력인 박 대통령과 미래 리더인 유 의원 사이에서 대구 민심이 아직은 현재 권력 쪽으로 기울어 있는 셈이다. 비박 후보인 이종진 의원의 불출마 선언 등이 단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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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엄기홍(정치외교학) 교수는 “진박 마케팅은 대통령을 대구의 힘으로 만들었다는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대구의 차기 리더십을 누가 갖더라도 이런 현상은 이어질 것이고 그 리더가 어떤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포스트 진박 마케팅’의 성패도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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