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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끝난 고3이나 혼인신고 때 예비부모 교육시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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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충북 영동에 사는 일용직 근로자 김모(45)씨는 지난해 6월 술을 마시고 아들(10)과 딸(9)의 온몸을 여러 차례 폭행했다.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린 시절 자신도 부모로부터 수시로 폭행당했기에 별다른 죄책감이 없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도 활용 가능
출생신고 때 양육 과정 이수하면
신생아 무료검진 혜택 주는 방법도
유치원생엔 “때리지 마세요” 교육

부부 사이도 틀어져 부인(35)은 아이들을 버리고 가출했다. 법원은 교사의 신고로 구속된 김씨의 친권 상실을 선고했다. 두 아이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위탁 중이다.

 10세 무렵부터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계모 밑에서 자란 양모(35·여)씨는 중학교 때 이후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도 받았다. 어렵사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양씨는 22세에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았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서 그런지 가족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남편은 지난해 7월 가출했다. 충격을 받은 양씨는 아들(당시 6세)을 살해한 뒤 도주했으나 나흘 만에 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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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준비되지 않은 부모들 때문에 수많은 가정이 해체된다고 지적한다.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출산을 하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정불화가 생기면 쉽게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공주대 최흥순(윤리교육과) 교수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10년간 학교를 다녀도 부모의 역할을 배우는 기회는 사실상 없다”며 “학교마다 도덕·윤리과목을 교육 과정에서 제외시켜 인성 교육이 아예 차단됐다”고 강조했다.

 충청권의 한 고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백모(50) 교사는 “현재 초·중·고에서 윤리 교육은 충효(忠孝)가 주를 이루는데 성인이 된 뒤 자녀 등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는 가르치지 않는다”며 “인성 교육이 마지막으로 이뤄지는 학교 현장을 외면하면 나중에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가 떠안게 된다”고 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올해부터 본격 시행하는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능을 끝낸 고교 3학년을 대상으로 ‘예비부모 교육’을 실시하자고 제안한다. “청소년기 때부터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야 효과가 높다”(진미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이유 때문이다.

 아버지의 학대 와중에 숨진 부천 초등학생 최군(2012년 당시 7세) 사건처럼 폭력과 학대의 대물림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소년교도소와 소년원 등 잠재적 폭력 고위험군 집단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대부분 가정과 학교에서 폭력·따돌림 등을 이미 겪었고 부모에 대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들도 불과 5~10년이 지나면 결혼·출산을 거쳐 부모가 될 것이기 때문에 예방 교육으로 아동 학대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최대한 차단하자는 것이다.

 호남 지역에서 소년원장을 역임한 조모(64)씨는 “면회도 안 오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을 위해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경기유치원은 학대가 의심되거나 친구를 괴롭히는 경우, 반항적인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엄마·아빠, 때리면 안 돼요”라고 말하도록 가르친다.

이유임(55·여) 원장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부모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어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혼인신고 때 운전면허 적성검사처럼 몇 시간이라도 소양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국부모교육학회 변미희(백석대 교수) 회장은 “온·오프라인에서 부모 교육을 받아야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무료 검진 등 혜택을 받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며 “출생신고 때도 육아종합지원센터와 건강가정센터 등에서 부모 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강동욱(법학과) 교수는 “성 교육처럼 초·중·고에서 부모의 역할과 조건, 아동 학대 현실을 가르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고 했다.

대전·수원·부천=신진호·임명수·최모란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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